▲ 김점오 조교사협회 회장이 ‘청룡비상’을 쓰다듬고 있다. 청룡비상은 2013년 브리더스컵 2세 마 경주에서 우승한 말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사)서울경마장조교사협회 김점오 회장

마필관리사로 말과 맺은 인연… 어느덧 40년 흘러
제 생애 다시 오지 않는 ‘청마의 해’ 氣 받아야죠
말은 겁 많은 동물… 무수한 스킨십으로 신뢰 형성
경마는 ‘킹 오브 스포츠’… 한국만 도박으로 인식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올해 갑오년은 60년마다 찾아온다는 ‘청말 띠의 해’다. (사)서울경마장조교사협회 김점오(55) 회장에게 ‘청마의 해’는 그 어느 해보다 의미가 각별하다.

김 회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말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천년지기입니다. 평생 함께해야 할 친구죠”라고 했다. 김 회장이 말과 함께해온 세월은 자그마치 40년이다. 웬만한 부부의 인연보다 더 길고 끈끈한 셈이다.

그가 1974년 8월 뚝섬 경마장에 입사하면서 말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당시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시골에서 상경한 김 회장이 택한 첫 직업은 마필관리사였다. 5년간 관리사를 지낸 김 회장은 보다 장래성이 있는 기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기수학교에 등록한 그는 면허를 취득해 10년간 기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체중조절에 실패하면서 기수를 그만뒀다. 기수를 하려면 몸무게 52kg 이하에 신장 155cm 이하의 체격 조건을 갖춰야만 한다. 신체조건이 따르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김 회장은 “한명회와 같은 칠삭둥이가 기수를 할 수 있다”면서 “현재 내 몸무게가 77~78kg인데 어떻게 기수를 했는지 의심이 갈 정도”라며 웃음 지었다.

기수가 되기 위해선 어려서부터 자신을 철저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김 회장은 말했다. 그의 아들 역시 기수가 되고자 했으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이미 체중이 65kg을 넘으면서 꿈을 접었다. 이후 김 회장은 조교사 자격증을 취득, 현재까지 조교사로만 25년 가까이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사)조교사협회 회장직을 맡아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조교사’ 용어 때문에 마사회와 조교사협회 간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김 회장은 설명했다. 마사회 측은 용어가 일반인이 알아듣기 어려워 ‘감독’으로 바꾸자는 입장인 반면 협회 측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조교사는 말을 골라서 가르쳐 경주에 내보내는 선생이란 뜻”이라며 “마사회에서는 이 같은 뜻을 무시하고 감독이란 용어로 바꿔 일방적으로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 청룡비상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김점오 조교사협회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경마는 ‘혈통의 경주’라고 한다. 경주마는 사람만큼 혈통이 잘 정립돼 있다. 김 회장은 “고조부, 증조부, 고고조부까지도 족보가 있는 게 말의 혈통”이라며 “혈통이 없으면 경주마에 등록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말의 부모가 누구인지에 따라 뱃속에 들어 있을 때부터 매매가 이뤄진다. 누구의 혈통이냐에 따라 경주마로서의 성공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것이다.

특히 올해가 청마의 해인 만큼 김 회장의 각오는 남다르다. 그는 “60년 만에 돌아오는 청마의 해다. 내 일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며 “모두가 얼마나 그 기를 받고 싶겠는가. 청마의 용맹스러움을 받아 올해 비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경주마는 총 31마리다. 특히 김 회장은 31마리 말의 ‘고아원 원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말은 아파도 말을 못한다. 마치 고아원 아이들이 아파도 울기만 하는 것과 같다”며 “선생님이 병원에 데리고 가서 주사를 맞혀야 한다.

하지만 말은 고아원 아이들보다 더 표현을 못 한다”며 말했다. 이로 인해 김 회장은 조교사들이 본의 아니게 가족들을 서운하게 할 때가 많다고 한다. 조교사들이 아내로부터 “내가 중요해? 말이 중요해?”라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가족보다 말에 더 관심을 쏟고 민감한 반응을 보여서다.

김 회장은 가장 애착이 가는 말로 ‘잘 뛰는 말’을 꼽았다. 그는 “여자가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말이 있듯이 말은 아무리 포학해도 잘 뛰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고 말했다. 어떠한 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크게 좌우되는 셈이다. 또한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시하는 곳이 경마장이다.

김 회장은 “성적은 바로 생계와 직결된다. 말을 제대로 못 고르면 망하는 것”이라면서 “좋은 말을 고르면 폼 나게 스테이크를 먹지만 좋은 말을 고르지 못할 경우 컵라면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김 회장이 가장 기대주로 꼽은 말은 ‘청룡비상’이다. 청룡비상은 2013년 브리더스컵 2세 마 경주에서 우승한 말이다. 김 회장은 “청룡비상은 우리의 희망이자 꿈”이라며 청룡비상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경주마는 보통 경마장에 1~2세 때 와서 3세부터 본격적인 경주마로 달리게 된다. 경주마의 수명은 대략 3년으로 본다. 사람의 사회 활동 나이로 계산할 경우 경주마의 나이 3세는 30~40대에 해당한다. 사람이 30~40대에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 같이 말도 3~4살이 전성기다.

또한 김 회장은 말과 소통하기 위해선 무수한 스킨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때로는 말의 입에 손을 넣을 수 있어야 하고, 귀를 잡고 흔들 수도 있어야 하며, 그 무서운 뒷발도 들 수 있을 만큼 서로 간의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겁이 많고 예민하기 때문에 기수나 조교사가 자신을 절대 헤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김 회장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며 “쓰다듬으면서 잘했다 칭찬해주고, 사랑하고 예뻐해 주면 말이 ‘이 사람은 나를 절대 헤치지 않는다’는 신뢰가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마를 도박으로 보는 사회적 편견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했다. 김 회장은 “세계적으로 경마를 ‘킹 오브 스포츠(King of sports)’라고 부른다”며 “영국 왕실에서 시작했고,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만든 게 경마”라고 강조했다.

세계 어디에도 경마를 도박이라고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하루에 10만 원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경마에 10만 원을 쓰면 스포츠고, 11만 원을 쓰면 도박”이라고 했다. 즉 자신의 씀씀이를 통제 못하게 되면 도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청룡비상에 사료를 먹이는 김점오 조교사협회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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