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시나리오 작가·칼럼니스트)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사극(史劇)일수록 역사왜곡 문제가 쟁점이 되곤 한다. 역사학자 가운데 사극을 시청하다 TV채널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막장은 고사하고 실존인물에 대한 왜곡이 도를 넘는다는 것이다.

소도구의 등장에도 웃지 못할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삼국시대를 다룬 모 드라마의 경우 중국 청나라 시대의 분채자기가 등장했다.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극에 조선백자가 탁자 위에 놓이는가 하면 조선시대 가구인 사방탁자가 버젓이 등장하는 사례도 있다. 필자가 5년 전 ‘어 퓨 굿맨(A Few Good Man)’을 쓴 헐리웃의 유명작가 애론솔킨과 함께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모라와칸’이란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였다. 미국의 젊은 영화 학도를 통해 전달돼 영어로 번역된 시나리오를 솔킨은 자세히 자문해 주었다.

그가 필자에게 집요하게 질문한 것은 시나리오 내용 중 어느 부분이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이냐는 것이었다. 그는 ‘시대 인물을 다룬 스토리는 가능한 역사기록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주문했다. 이것이 많은 역사극을 만들고 있는 헐리웃의 기본적인 정신이란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지금도 한·중 합작과 헐리웃 진출을 위해 수정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솔킨의 당부가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요즈음 방영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기황후’는 처음부터 역사왜곡 문제가 돌출된 작품이다. 필자도 흥미를 느껴 기대하는 마음으로 첫 회를 시청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상상을 초월한 왜곡을 보여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도저히 당시의 역사적 기록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황당한 허구로 일관하는 것이었다. 기황후가 중국영화에 나오는 단골 검객 무사로 등장하기도 했다. 기황후의 젊은 시절이 이렇게까지 왜곡될 수 있을까. 기황후를 원나라 황제와 고려왕과의 삼각관계로 꾸민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황후는 과연 어떤 여인이었으며 어떻게 황비가 됐고 고려와는 어떤 관계를 가졌던 인물이었을까. 필자는 과거 기황후가 태어났다는 충북 진천군 노은 궁실의 유적을 수차례 답사한 적이 있으며 원나라 황제의 전설이 남아 있는 진천 무제봉도 올라가 보기도 했다.

사대부 기자오의 딸로 태어난 기황후는 10대 후반에 공녀로 원나라에 끌려간다. 이미 원나라에 가 있던 환관에 의해 궁녀가 된 것인데 공녀 대오에서 탈출, 복면을 쓴 검객이 된 것을 보면 참으로 상상을 초월한 스토리다. 시청률이 생명이라지만 역사적 인물에 대한 사실을 이렇게까지 왜곡해도 되는 것일까.

기황후는 이지적이고 침착한 성품의 여인이었을 것으로 상정된다. 많은 궁녀 가운데서도 순제(順帝)의 사랑을 독차지한 후 지략으로 전 황비를 제거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만 고궁박물관에 소장된 기황후의 영정을 보면 신장은 그리 크지 않고 얼굴은 동그란 편이며 몽골여인과도 흡사한 건강한 체격을 지닌 여성이었다.

기황후는 현대에도 몽골인의 위대한 국모로 존경받고 있다. 멸망 직전 황제와 가족들을 인솔하고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와 대제국의 사직을 지켰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황후의 후손이라는 긍지를 지니고 있으며 이런 연유로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조금 왜곡하면 어때?’라는 작가나 제작자들의 변명이 국적불명이거나 저급한 역사물을 양산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방송국마다 역사, 고고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시대극고증위원회’ 같은 조직을 만들어 드라마가 제작되기 전 학적검토를 의무화하면 어떨까.

사극은 과거 역사의 구현이자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창작물이다. 실존인물에 대해서만큼은 사료를 중시하고 팩트와 픽션을 엄격한 잣대로 구분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드라마가 생명력이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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