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새누리당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냐, 유지냐를 두고 속 보이는 계산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 공약으로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약속했다. 그 연장선에서 새누리당은 지난 재보선 때 약속을 지키겠다며 민주당과는 달리 정당공천을 하지 않았다. 그런 새누리당이 요즘 고민에 빠졌다. 당초 약속대로 그대로 지키자니 실익이 날아가는 것 같고, 그렇다고 대놓고 정당공천을 하자니 약속과 원칙이 어긋난다. 게다가 혹여 있을지도 모를 지방선거에서의 역풍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

새누리당이 다음 주 의원총회를 통해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를 논의해서 결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답은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황우여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했지만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는 은근슬쩍 넘어가버렸다. 대신 느닷없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들고 나왔다. 정치의 내면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게 ‘물타기 전략’이라는 것을 금세 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16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에서 그 속셈이 드러났다. 한마디로 기초선거에서도 정당공천을 하겠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는 이미 결심을 했고, 다음 주에 의원총회에 부쳐 당론으로 확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최경환 원내대표는 정당공천제를 폐지할 경우 위헌 소지가 있을 뿐더러 범죄 전력자나 지방 토호들이 난립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물론 일리는 있다. 너도나도 다 출마할 경우 제대로 검증도 못 하고 결국 돈 있는 지방토호들의 안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헌 문제는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말 이런 문제 때문에 정당공천제 폐지 약속을 걷어차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새누리당의 속셈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기초선거에 후보를 공천함으로써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유지하고, 차기 총선 때 그들의 바닥 조직을 탄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놓칠 수 없는 특권(기득권)을 계속 지키겠다는 것이다. 말로는 ‘기득권 내려놓기’ 운운하지만 정작 알짜배기는 위헌 논란까지 거론하면서 사수하겠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정당공천제를 폐지할 경우 상대적으로 새누리당이 불리하다는 점이다. 가장 접전 지역인 수도권의 경우 현역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은 민주당 소속이나 그 주변의 인사들이 더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할 경우 현역 프리미엄이 더해져서 민주당 우위의 판세가 그대로 굳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판을 뒤집기 위해서라도 정당공천제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까지도 국회의원의 기득권과 당리당략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 셈이다. 이 얼마나 구태이며 비정상적인 것인가. 어떤 제도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정당공천제도 마찬가지다. 장단점을 논하기 전에 이미 여야가 바로 지난 대선에서 약속했던 것이며, 더욱이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그대로 온존시키는 방식이라면 이것은 구태다. 게다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이대로 지방정부를 중앙정치에 계속 예속시키는 것이 옳다는 말인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다수의 국민도 새누리당 꼼수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이제 관건은 민주당이다. 민주당도 모른 체하고 새누리당 꼼수에 영합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무엇이 구태이며 무엇이 비정상적인 것인지, 그리고 누가 국민을 우롱하는지를 폭로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를 프레임으로 걸고 당의 사활을 걸고 싸워야 한다. 그게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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