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당현종(唐玄宗) 시대에 조정에서 우상(右相)과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겸임했던 권신 양국충(楊國忠)은 사당을 결성하고 뇌물을 받아먹으며 국정을 문란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와 갈등을 빚은 안록산(安祿山)이 군주의 측근을 청소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사람들은 양국충이 국란을 유발했다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반란군이 동관(潼關)을 압박하자, 수비대장 가서한(哥舒翰)은 적에게 투항했다. 숙종에게 양위했다가 보고를 들은 당현종은 잔뜩 겁을 집어 먹었다. 반란군이 장안을 압박하자, 양국충은 사천(四川)으로 피하자고 건의했다. 대책이 없던 황제는 용무(龍武)대장군 진현례(陳玄禮)에게 6군을 정비하라고 명했다. 날이 밝자마자 현종은 양귀비 자매와 황자, 공주, 황손을 비롯한 궁인과 환관들을 데리고 궁궐을 출발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다.

어가가 함양(咸陽)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였다. 도망자들에게는 먹을 양식조차 없었다. 안타깝게 여긴 백성들이 콩과 보리가 섞인 음식을 가지고 왔다. 어린 황손은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맨손으로 음식을 깡그리 먹어치웠다. 일행이 마외역(馬嵬驛)에 도착하자, 배고픔과 피로에 지친 호종하던 장졸들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했다. 냉정하게 사태를 관망하던 진현례는 군사들의 분노가 양국충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고 판단했다. 그는 환관 이보국(李輔國)을 시켜 황태자에게 양국충을 죽이자고 보고했지만, 황태자는 시원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마침 토번(吐藩)의 사자 20여 명이 양국충을 붙잡고 먹을 것을 달라고 떼를 썼다. 그것을 본 군사들은 화가 나서 양국충과 오랑캐들이 반란을 일으킬 음모를 꾸민다고 외쳤다. 누군가가 활로 양국충이 탄 말의 안장을 쏘자, 양국충은 황급히 마외역 서문으로 도망쳤다. 군사들은 양국충의 사지를 찢은 후에 머리를 잘라서 역 바깥에 버렸다. 양국충의 아들과 사촌들도 죽였다. 어사대부 위방(魏方)은 재상을 함부로 죽였다고 나무라다가 피살되었다.

분노한 군사들이 역을 포위했다. 영문을 묻는 현종에게 시종은 양국충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대답했다. 현종은 지팡이를 짚고 역문으로 나가 군사들을 달래며 해산하라고 명했다. 아무도 현종의 말을 듣지 않았다. 현종이 고력사(高力士)에게 내막을 묻자, 진현례가 대신 나서서 “양국충은 반란을 일으켰다가 피살되었습니다. 양귀비가 다시 폐하를 모시지는 못할 것 같사오니, 폐하께서는 양귀비에 대한 사랑을 뿌리치시고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라고 건의했다. 현종은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양귀비를 두둔했다. 위악(韋諤)이 몇 번이고 땅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결단을 촉구했다. 현종은 외부와 차단된 구중궁궐에 있던 양귀비가 어떻게 양국충의 모반을 알았겠느냐고 변명했다. 옆에 있던 고역사가 대답했다.

“양귀비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양국충을 살해한 장사들이 양귀비가 폐하의 곁에 있다면 안심하겠습니까? 장사들이 페하를 안심하고 모실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십시오.”

현종은 마지못해 고력사에게 양귀비를 불당에서 끌어내어 목을 졸라 죽이라고 명했다. 양귀비의 시체는 역의 마당으로 끌려나왔다. 진현례 등은 역으로 들어와 양귀비의 시신을 확인한 후에 갑옷을 벗고 황제에게 사죄했다. 현종은 그들을 위로하고 군사들에게도 사실을 알리도록 명했다. 진현례는 큰 소리로 만세를 외치며 배례한 후에 군대를 정비하여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양국충의 아내와 자식을 비롯한 일족들은 진창(陳倉)까지 도망쳤다가, 현령 설경선(薛景仙)에게 피살되었다. 진현례는 굶주림과 피로로 분노한 군사들의 동향과 태자의 의도를 치밀하게 관찰하고, 소란의 근본적인 원인이 양국충 형제와 누이들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태자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흥분한 군사들이 양국충을 모반죄로 죽이는 것을 용인하고, 현종에게 양귀비까지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건의했다. 왕조의 사활이 걸린 다급하고 격렬한 정치투쟁에서 그는 명찰을 통해 냉정하게 형세를 관찰하고, 분노한 군사들의 편에서 화근을 제거하는 결단을 촉구했다. 역사가들은 양귀비라는 여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화근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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