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아버지합창단 단원들이 지난 12일 서울시 서초구 서초구민회관에서 가곡 ‘고향의 노래’를 연습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서울아버지합창단

40~60대 택시기사부터 검사까지 연령·직업 다양
1998년 IMF 당시 창단, 지친 이웃에게 희망 전해

[천지일보=이혜림‧김예슬 기자]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뭇 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녁을 날아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서 보라/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달 가고 해가면 별은 멀어도/ 산골짝 깊은 곳 초가 마을에/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 잔치 흥겨우리/ 아 이제는 손 모아 눈을 감으라/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고향의 노래 (김재호 시, 이수인 곡)-

지난 12일 저녁 7시 서울시 서초구 서초구민회관에서 웅장한 저음의 메아리가 들려왔다. 불이 다 꺼진 구민회관의 현관을 열고 가곡 ‘고향의 노래’의 노랫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지하 1층에 있는 제1연습실에 다다랐다. 이곳은 바로 서울아버지합창단의 연습실이다.

매주 화요일이면 4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아버지들이 이곳에 모인다. 연령층만큼이나 이들의 직업도 의사와 목사, 택시기사, 교수, 검사, 회사원 등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합창을 하는 순간만큼은 마음도, 생각도 하나가 된다.

퇴근한 뒤 밥도 거르고 부랴부랴 연습실을 찾는 단원들은 2시 30분가량 진행되는 연습에도 지친 기색이 없다. 이들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지휘를 맡고 있는 엄성화(테너) 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간식 시간 서로에게 시루떡과 요구르트를 권하는 모습에서는 어머니들 못지않은 푸근함까지 느껴진다. 반주는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영산아트홀에서 피아노 앙상블을 연주하는 등 다양한 경력 있는 한정은 씨가 맡았다. 합창단에서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

◆“노래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행복하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기 때문에 행복하다’라는 말이 있죠. 저희도 그렇습니다. 일상에 지친 아버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고자 합창단이 창단됐습니다.”

지난달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서울아버지합창단 사무실에서 만난 추동천 단장은 이 같이 힘주어 말했다. 그는 지난 15년간 합창단의 시작과 과정을 지켜본 산증인이다.

IMF 외환 위기로 가장들의 어깨가 점점 처졌던 1998년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음악을 통해 꿈과 소망을 전하고자 아버지들이 뭉쳤다. 사회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따뜻한 사랑의 열기로 훈훈하고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취지에서다.

이렇게 한 사람, 두 사람씩 모여든 인원은 총 27명. 이들이 모여 1998년 12월 7일 서초구민회관 강당에서 개최한 창단연주회가 서울아버지합창단의 시작이다. 초대 단장은 1960년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로 인기를 끈 가수 최희준 씨다. 최 씨의 지휘 하에 초대 아버지 합창단은 제1회 무의탁노인돕기 자선음악회를 성공리에 마쳤다.

▲ 지난달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서울아버지합창단 사무실에서 추동천 단장이 합창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위쪽). 지난 2005년 5월 룡정중학교와 서울아버지합창단이 자매결연을 맺었다. 사진은 자매결연패. ⓒ천지일보(뉴스천지)

첫 음악회와 함께 시작한 것은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이다. 고아원, 양로원, 교도소, 군부대 등 여러 곳을 다니면서 음악회를 열었다. 음악회로 얻는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에 전달했다. 이들은 노래뿐 아니라 때로는 양로원을 직접 방문해 어르신들의 때를 밀어 드리기도 하고, 무료급식소에서 배식과 설거지 등 여러 봉사활동을 하기도 한다.

지난 2005년 5월에는 우리나라 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중국 연변을 찾아 룡정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룡정연극원에서 졸업축하음악회를 열었다. 룡정중학교에 다니는 학생 대부분이 한국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합창단이 가족과 떨어져 외로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특별한 졸업식을 기획한 것이다. 이때 추 단장은 한국에서 한 학생의 부모를 찾아 사진을 찍어 졸업축하음악회에서 공개했다. 사진을 보자 학생들은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

“그때 제가 학생들에게 ‘내가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를 직접 만났어요. 부모님들은 한국에서 잘 살고 계시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부모님들께서 전해달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더니 관객석 여기저기서 코를 훌쩍대는 소리가 나며 난리가 났어요.”

추 단장은 이같이 회상하며 당시의 감동이 떠올랐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잊지 못할 졸업식이 된 이날 음악회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룡정중학교와는 자매결연을 했다.

◆“우리 남편이 변했어요”

“술 마시고 담배만 피던 남편이 변했어요. 노래를 하기 위해 술‧담배를 끊고 연습하더라고요. 스스로 힐링도 되고 정말 좋아요.”

한 합창단원의 아내가 이같이 말했다고 추 단장은 전했다. 가정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아버지들이 정년퇴임을 할 시기가 되면 다른 취미활동이나 일을 찾기 위해 힘쓴다. 어떤 단원은 열린음악회에 출연한 합창단을 보고 문의한 딸에 의해 입단을 하게 됐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데…’ 라는 생각은 많이 하지만 ‘나는 음치인데…’ ‘특출나게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에 쉽게 참여하지 못한다”며 “독창과 달리 합창은 다 함께 노래한다. 힘을 합쳐 하다 보면 못해낼 것이 없다”고 추 단장은 말한다.

이렇게 모인 합창단원은 현재 110여 명에 이른다. 아마추어지만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한다. 이 단체는 지난 9월 9일 서울시 복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감사패와 단체 봉사상 등 수상경력이 있다.

“일본은 합창단도 많고 지원도 빵빵하죠. 우리나라도 이제 먹고 살기 위해 돈 버는 것에 전전긍긍하던 시대는 가고 이제는 문화를 즐기는 시대가 돼야 할 것입니다. 막연하게 사회를 돕지 않고 남성들이 힘을 합치고 용기를 내서 함께 한다면 못할 것이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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