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의 정치를 북한 현장에서 지적한 사람은 적어도 1970년 이후 없었다. 그것도 북한 권력의 최고 산실인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말이다. 지난달 말 북한을 방문한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Elbegdorj, 50) 몽골 대통령이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강연에서 “폭정은 영원할 수 없다(No tyranny lasts for ever)”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이 말이 오늘의 북한을 겨냥한 발언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허나 굳이 몽골 대통령의 표현을 빌려야 북한 정치가 폭정이란 것을 입증할 수 있단 말인가.

15일 몽골 대통령실 홈페이지가 공개한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의 지난달 31일 김일성종합대학 강연문 영문본에 따르면,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삶을 열망하며 이는 영원한 힘(eternal power)”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이 당초 예상과 달리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정상회담을 갖지 못하고 귀국한 것이 이 강연 내용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게 만든다.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자유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발전 기회를 발견하고 실현하게 하며 이는 인간 사회를 진보와 번영으로 이끈다”며 “몽골은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존중하고 법치주의를 지지하며 개방 정책을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몽골 사람들은 ‘아무리 달콤해도 다른 사람의 선택에 따라 사는 것보다 고통스럽더라도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며 “자유 사회(free society)는 달성해야 할 목표라기보다는 살아나가기 위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며 목표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역설했다.

계속하여 그는 “몽골은 21년 전 스스로 비핵 지대를 선포했고 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은 몽골의 이 같은 지위를 문서로 확정했다”고 소개했다. 얼마든지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는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몽골이 2009년 사형 제도를 폐지했다고도 했다. 북한은 여전히 공개 처형을 실시하고 있다. 몽골 대통령실은 이날 연설에 대해 “질문은 없었지만 교수와 학생 등 청중은 대통령이 떠날 때까지 박수갈채(lengthy applause)를 보냈다”고 밝혔다. 또 연설의 주제는 북한 측이 제안했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란 말은 쓰지 말아 달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1990년 몽골 최고의 민간 신문인 ‘아르드칠랄(Ardchilal)’을 창간한 언론인 출신이다. 같은 해 공산당 독재를 종식한 몽골 민주화 운동의 리더 역할을 했고 4선 국회의원을 지낸 뒤 2009년 5월 몽골의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지난달 28~31일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우리 전문가들을 비롯하여 국제사회에서는 “김정은이 최초의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몽골 대통령의 이상과 같은 발언은 정상회담 불발에 대한 불만의 표출일 수도 있다. 김정은이 제아무리 중국과의 정상회담으로 국제정치무대에 데뷔하려 해도 평양까지 찾아온 이웃나라 정상을 외면한 것은 불만을 사기에 충분하다.

근래 북한에서는 일부 연예인들과 자유세계의 동영상물을 시청한 수십여 명의 북한 주민들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연예인들이 처형될 때는 그저 이설주와 관련하여 입을 막으려 했거니 했는데 뒤이어 80여 명의 주민들을 기관총으로 처형했다는 소식은 우리 모두를 소름끼치게 만들고 있다. 피는 피를 부르기 마련이다. 김정은 체제는 위협과 공포정치로 3대 세습을 안착시키려 하지만 이제 북한 주민들은 그 폭정을 수용하기에 너무 배가 고프고 지쳐있다. 가난과 범죄는 혁명의 어버이라는 말 명심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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