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부모산성 집수시설 전경, 부모산성 출토 명문 성돌, 집수시설 출토유물, 서문지 전경 (사진제공: 문화재청)

부모산성 4차 발굴조사
계단식 연못시설 확인
서문지, 4차례 고쳐 쌓아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던 곳으로 추정되는 충북 청주시 부모산성(父母山城, 충청북도기념물 제121호) 발굴조사지에서 최근 서문지와 연못 형태의 집수시설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부모산성에 대한 제4차 발굴조사를 하는 충북대학교박물관이 조사 결과 ▲부모산성 서문지(西門址)와 집수시설(集水施設) ▲제1보루(堡壘, 방어용 구축물)의 목책열(木柵列, 기둥구덩열)과 저장구덩이 ▲인접한 학천산성(鶴天山城)의 성벽구조 등을 확인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부모산성의 집수시설은 평면 원형으로 지름 9m에 3단의 계단상으로 축조했으며, 바닥 면은 얇은 판석형의 할석(割石)을 깔았다. 내부에서는 연화문 와당을 비롯한 다량의 기와류와 고배(高杯, 높은 잔), 완(盌 사발형 토기) 등 6세기 후반경의 신라 토기가 출토돼 축조와 사용 시기를 말해준다.

서문지는 4차례 정도 고쳐 쌓은 것으로 드러났다. 1, 2차 성벽축조 시에는 성문의 옆벽이 본체성벽과 직각이 되도록 쌓아 올렸으나, 3차 개축 때에는 곡면으로 처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러한 직각 축조 방식은 신라 계통이며, 곡면형은 백제 양상임을 고려할 때 신라가 축조했다가 백제에 의해 개축된 것으로 판단됐다. 이곳에서 ‘相(?)’ 등과 같은 글자가 새겨진 돌이 출토돼 성벽 축조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앞으로 심도 있는 판독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1보루에서는 목책열이 성벽 내측을 따라 일렬로 노출돼 처음에는 목책을 세워 방벽(울타리)을 축조했다가 이후 토축성벽(土築城壁, 흙으로 쌓음)에서 석축성벽으로 변화한 양상이 확인됐다.

또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백제식 플라스크(Flask)형 저장구덩이가 부모산성과 제1보루, 그 사이 능선부, 학천산성의 성 내부에서 모두 확인됐으며, 내부에서는 신라ㆍ백제 토기가 섞여 출토돼 부모산성에서 신라와 백제가 각축전을 벌인 역사적 증거의 일부로 밝혀졌다.

부모산성에서 약 500m 거리인 학천산성은 보루의 규모로, 내ㆍ외 석축벽 사이에는 토축으로 축조한 독특한 구조를 보이고, 성벽 상부는 할석(깬 돌)으로 즙석(葺石, 지붕같이 덮는 방식)해 마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성벽 바깥 아래부터 쌓아 다지는 방식과 지붕같이 덮는 방식의 구조는 백제 사비도성의 나성(羅城, 도성의 외곽을 두르는 성곽) 축조양상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이번 조사 결과 신라ㆍ백제의 축성방식과 유물이 모두 확인된 부모산성은 양국이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던 중요 거점 성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충북대박물관 부모산성 발굴조사단은 “부모산성의 발굴․연구를 바탕으로 유적 정비를 진행한다면 청주 지역의 고대사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편 부모산성은 넓은 평야의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부모산 정상부와 동쪽과 북쪽의 계곡 상단을 두른 석축(돌로 쌓은)산성이다. 고고학적으로 이 부모산의 동쪽과 북쪽, 서쪽은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구릉의 주변을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과 미호천으로 흘러드는 지천(支川, 무심천ㆍ석남천)이 휘감고 있어 비옥한 충적평야를 형성해 사람들이 거주하기에 적당한 환경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는 부모산성 기슭과 주변에서 확인된 다양한 유적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부모산성에 대한 문헌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15 청주목(淸州牧) 고적(古跡)에 “부모성(父母城)은 주(州)의 서쪽 15리에 있다. 석축으로 둘레가 2427척이며, 성안에 큰 연못이 있는데 지금은 폐성됐다”고 기록된 것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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