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로이전쟁(자료사진). (사진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트로이전쟁은 서양문명을 형성한 최초의 유명한 전쟁이다. BC 1200년경 발발한 이 전쟁은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통해 알려졌다. 시인의 문학적 상상력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됐으나 근래에 에게해와 흑해를 잇는 다르다넬스 해협의 관문 부근에서 파괴된 유적이 발굴되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호머의 서사시에서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를 유혹함으로써 발생했다고 묘사했지만, 사실은 에게해에서 흑해로 교역을 확장하려던 그리스인들이 통과세를 요구하는 트로이와 충돌한 전쟁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수많은 도시국가로 분열된 그리스가 최초로 연합한 계기가 됐다.

일찍이 교역의 요충지를 차지해 막대한 부를 누리던 트로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튼튼한 성곽을 구축해 공성전에 서툴고 내분이 심한 그리스군을 9년 동안이나 막아냈다. 그리스의 확장을 위협으로 느낀 아시아의 동맹군이 트로이를 지원한 것도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함락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리스는 오디세우스의 계략에 따라 거대한 목마를 제작해 군사들을 숨기고 해안에 남긴 후에 일부러 철수했다. 트로이는 목마를 전리품으로 삼아 성안으로 들여왔다. 트로이가 승리의 파티로 지친 틈에 그리스군이 목마 밖으로 나와 불을 지르고 성문을 열었다. 트로이는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

호머의 서사시가 생성된 지역은 지중해를 향해 돌출한 크레타섬과 수 백 개의 섬이 밤하늘의 별처럼 흩어진 에게해이다. 이 지역은 물산이 풍부하지 않을뿐더러 북부 산악지대의 아케아인과 도리아인이 번갈아 이주했다. 그렇지 않아도 부유하지 못한 이 지역은 나날이 증가하는 인구의 압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스 반도에 살던 사람들은 해외에서 생존공간을 확보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결국, 트로이전쟁은 생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그리스인들의 호전성이 촉발한 침략전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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