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소수민족 가운데는 말은 있어도 표현할 글이 없는 나라가 3백 민족이 넘는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 보존하고 싶어도 구전(口傳)으로 전해 내려올 뿐 다른 방법이 없다.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바우바우시의 찌아찌아족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얼마 전 한국의 훈민정음학회에선 찌아찌아족과의 교류 끝에 한글을 보급하기로 했고, 그들은 그들의 문자로 한글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며 쉽고 편리한 문자, 만물 그 어느 것이라도 표현하고 소리 내지 못할 것이 없는 문자,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노력의 첫 결실이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있기까지는 학회 측의 남다른 가치관이 눈길을 끌었다.

즉,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보급하겠다는 단순 홍보의 차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려는 배려의 정신이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것이 소중하다면 그들 역시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가 소중할 것이라는 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한글을 보급해 사용케 하므로 그들로 문자를 갖게 했으며, 표현하고 전하고 남길 수 있는 문화국민이 될 수 있게 했다. 반면 우리는 우리의 자랑스런 한글을 세계에 널리 알려 나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됐다.

즉, 어느 한 쪽의 이익이 아닌 공동의 목적이요 이익이 달성된 셈이다. 바로 인류공영에 이바지 하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세계화 된 시대에 걸 맞는 의식의 발로가 그들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열게 했고, 나아가 그들은 한글 사용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했다는 의미 있는 교훈을 남겼다.

이제 편협 되고 극단적이며,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눈을 돌려 세계를 볼 수 있는 세계관 내지는 우주관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만이 선진 한국의 미래가 밝아 올 것이다.

지난달 24일 이대통령은 ‘화합과 통합이 새로운 시대정신’임을 역설했다. 오늘날 이 시대가 분열의 극치임을 반증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외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전에 갇혀 있는 우리의 정신과 의식을 깨워야 한다. 화합과 상생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정신문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깨울 수 있는 선각자(先覺者)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운동은 밑으로부터 일어나는 자발적 시민운동이어야 한다. 절대 관이 주도하는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쩌면 종교가 있어야 한다.

종교는 ‘종교(宗敎)’란 단어의 뜻에서 짐작하듯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가르침보다 가장 으뜸이 되는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즉, 종교의 종사자들은 이 세상을 선도하고 계도해야 할 도의적 책임이 있음을 일깨우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오히려 종교편향적 의식에 만취 돼 있으며, 명예와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해 선도는커녕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게다.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하며 민중의 생각을 읽으며 민중의 스승이 되어야 할 으뜸가는 가르침은 이 세상에선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이와 같은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또 인정할 때만이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화해와 상생은 시작될 수 있음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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