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고하늘 기자] 구병모 작가의 신작소설 <파과>는 극한의 아픔을 끌어안고 자동기계처럼 살아온 60대 할머니 킬러 ‘조각(爪角)’의 이야기다.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을 40년을 넘게 업으로 하고 살아온 조각. 그는 꽤 긴 시간을 직업(?)의 특성상 철저히 지킬 것 없는 ‘혼자’의 삶으로 고독하게 걸어왔다.

무정하고 냉혹하게 자신을 단련해온 그는 삶의 희로애락에 무감각했으며, 여성으로서의 행복 역시 남의 이야기로 치부했다. 말 그대로 황량한 삶 자체였다. 그러나 점차 노화와 쇠잔의 과정을 겪으며 그의 삶에 느닷없이 ‘타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다 키우고, 폐지 수집하는 노인의 손수레를 정리해주며, 의뢰인의 눈에서 슬픔과 공허를 읽어낸다. 또 방역 대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해주고 자신의 정체를 눈감아준 ‘강 박사’에게 남다른 감정도 품게 된다.

작가는 노년에 접어들면서 새삼스레 마주하는 감정 앞에 당혹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는데 공을 들였다. 깊고도 단단한 시선과 능수능란한 문장으로 그의 감정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소설은 ‘킬러를 내세운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인가’ 하는 선입견을 단박에 깨뜨리고 더 넓은 문학의 지평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상하고 부서져 사라져가는’ 존재의 운명. 우리 삶의 피할 수 없는 이치에 대한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탐구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332~333p”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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