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유난히 우리 고유의 영토 또는 옛 영토를 지키고 되찾고자 하는 운동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독도, 이어도, 대마도, 심지어 간도는 물론 저 대륙의 유라시아까지다.

내 것을 내 것이라 주장하는 일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일조차도 잊고 살았으니 이보다 더 한심한 일이 또 있을까. 그것은 무지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 무지했던 지난날을 깨닫게 하는 것 또한 우리 스스로의 깨달음이 아니라, 저들의 지나친 과욕이 오히려 우리의 눈을 억지로라도 뜨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동북공정은 물론 독도, 이어도 등의 지나치고도 억지스런 영토 주장들 말이다.

어찌되었건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스런 일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깨닫게 한 이유가 뭘까. 이젠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고 옛 찬란했던 영토와 문화의 숨결을 되찾아 이어가라는 시대적 명령 앞에 서 있음을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인즉,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시절 홀홀단신 고토회복과 문화회복의 중요성을 역설해 왔던 선각자들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귀는 독선과 아집과 욕심으로 이미 들을 수 없는 귀가 되었고 볼 수 없는 눈으로 변질돼 버렸기 때문이었으리라. 이제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보니 그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고, 바로 선각자 그들이 있었기에 역사는 꺼지지 않고 면면이 이어져 올 수 있었음을 또한 깨닫게 된다.

더 고무적인 것은 늦게라도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모든 걸 다 바쳐 찾고 구하고자 애쓰는 이들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음을 언론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찾고자 하는 영토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저 만주 벌판을 훨씬 넘어 유라시아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의 말 발굽소리와 호령소리가 지금도 울려 퍼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그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많은 부분의 성장과 발전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쓸데없는 일에 쓸모없는 소모전으로 많은 부분의 낭비가 있었음도 고백해야 할 것이다. 당리당략이 아닌 우리 모두의 희망과 미래를 제시할 때만이 갈라진 파열음이 한 목소리로 모아질 수 있음을 그 누구도 아닌 이 시대 지도자들부터 내다 볼 줄 알아야 한다.

3.1운동, 나라가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을 때, 자신과 당리와 당략을 버리고 종파를 버리고 하나가 되어 모두의 손엔 자신들의 목소리 대신 모두의 목소리인 태극기 하나만이 들려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이 현실, 더 쪼개지고 더 극에 달해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나라가 있어야 당이 있고, 나라가 있어야 종교의 신념도 있지 않겠는가. 당리당략의 결과가 가져온 것은 망국의 설움뿐임을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강하게 교훈하고 있다. 다시는 그와 같이 어리 섞고 무지했던 지난날을 답습하지 말라고….

엊그제 64주년 광복절이 지나갔다. 진정 우리에게 온전한 광복이 찾아 왔던가.

외적 광복이 아니라 내적 광복 즉, 생각과 의식의 광복이 속히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내적 광복이 찾아 올 때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고, 그 하나 된 정신으로 유구한 역사의 숨결을 다시금 되찾는 그날이 올 수 있음을 명심하자.

여기서 잠시 의사 안중근의 심경을 회고해 보자. 식민지 청년 안중근은 만주 벌판에서 열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해 보고픈 그 꿈을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을 향한 총소리와 함께 벌판에 묻었다. 이제 그 몫은 우리에게 왔음을 이 8월을 보내며 주문해 본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 전날 굳은 의지를 담은 ‘장부가’를 소개한다.

때가 영웅을 만들고 영웅이 때를 만드는구나
천하를 굽어보니 어느 날에 뜻을 이루고
동풍이 점점 차가우나 장사의 뜻이 뜨겁다
분함은 한 번 갔으니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쥐도적 이또여 어찌 목숨을 비길고
어찌 이에 이를 줄을 헤아렸으리오
모든 일은 본디부터 그러하도다
동포 동포여 속히 큰 뜻을 이룰지어다
만세 만세여 대한 독립이로다
만세 만세여 대한 동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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