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용 시인의 생가

4월 12일(음력 3월 3일)은 강남(동남아)에서 겨울을 보낸 제비들이 찾아온다고 하는 삼월삼짇날이다. 추운 겨울을 보낸 사람들의 눈에 지지배배 거리며 훨, 훨 날아다니는 제비는 얼마나 반가울 것인가?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제비가 봄을 부르는 길조(吉鳥)임에도 불구하고 그해에 제비를 처음 볼 때 ‘제비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문둥이’ ‘연자(燕子) 새끼’ 등의 비속어(卑俗語)로 부르며 일단 경계를 하였는데(일명 제비보고 말하기), 그 밑바탕에는 좋은 것에는 액운(厄運)이 따라올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를 떠올리며 매사 신중하게 처신하는 삶의 지혜라 하겠다.

예로부터 삼월삼짇날에 행했던 세시풍속 중에는 부드러운 쑥 잎을 따서 찹쌀 가루에 섞어 쪄서 쑥떡을 만들어 먹는 것이 있었다. 흐드러지게 꽃들이 피어나는 때를 맞아 반가운 손님 제비와 들판을 이리저리 뛰노는 까까머리 아이, 그리고 쑥으로 만든 떡 등을 생각하다 보니 불현듯 정지용의 시가 생각난다.

三月 삼질 날
정지용(鄭芝溶)
중, 중, 때때 중,
우리 애기 까까 머리.
삼월 삼질 날,
질나라비, 훨, 훨
제비 새끼, 훨, 훨.
쑥 뜯어다가
개피 떡 만들어.
호, 호, 잠들여 놓고
냥, 냥, 잘도 먹었다.
중, 중, 때때 중,
우리 애기 상제로 사갑소
- 학조(學潮) 1호(1926. 6) -

제비는 흥부전을 통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해졌다. 자신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준 흥부에게는 보은(報恩)의 의미로 온갖 보화가 나오는 박이 열리는 박씨를 물어다 주고, 재물을 탐내 자신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린 후에 하는 가짜 치료를 해 준 놀부에게는 벌을 내리는 박씨를 물어다주는 그 제비 말이다. 그저 웃음을 주는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 제비의 마음이 주는 울림이 크다.

사실 인간처럼 자신 위주로 생각하는 존재가 또 있을까 싶다. 오죽하면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도 말라’고 했을까. 인류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례들을 자주 보게 된다. 우리에게서 고급문화를 전수받아 미개함에서 벗어났으면서도 오히려 우리 민족의 역사에 큰 아픔을 여러 차례 주었고, 급기야 우리를 식민지로 만들어 삼십여 년을 종으로 삼았고, 또 민족 분단과 동족상잔(同族相殘)이라는 비극의 원인을 제공하고도 반성은커녕 역사를 끊임없이 왜곡하고 급기야 우리 땅까지 다시 넘보는 저들의 그 후안무치(厚顔無恥)함을 보라. 그 암흑의 시기에 우리 고향(조국)은 몰라보게 변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머리 검은 짐승들’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잊고 심지어 은혜를 원수로 갚는 만행(蠻行)을 멈춰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고, 지구라는 공간을 같이 살고 있는 다른 생명체들에게 말이다. 그것이 배신이 또 다른 배신을 낳는 악순환을 끊는 일이다.

정지용의 시를 생각하다가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렀지만 다시 우리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시인의 시 세계로 돌아가 보자. 우선 정지용하면 <향수(鄕愁)>라는 시가 떠오른다. 워낙 유명한 ‘국민 애송시’라 작품은 굳이 제시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실 <향수(鄕愁)>는 제네바 태생의 미국 시인 트럼불 스티크니(Trumbull Stickney, 1874~1904)의 대표작인 <Mnemosyne(추억)>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 정지용 문학관

정지용은 휘문고등보통학교(휘문고보)를 졸업하고 그 교비생으로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나왔는데, <향수(鄕愁)>는 일본에 유학을 간 직후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쓴 시다. 윤동주(1917년 만주 명동촌 출생) 역시 정지용(1902년 충북 옥천 출생)의 후배로 그곳에서 수학하였다(윤동주는 1년도 못 돼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됨). 이런 인연으로 도시샤(同志社)대학에는 두 시인의 시비가 나란히 서있다고 한다.

정지용이 <향수(鄕愁)>에서 노래한 풍경은 비단 시인이 태어난 충북 옥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품고 사는 고향의 모습이다. 그래서 한국인이라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정지용의 시 <향수(鄕愁)>에서 지금은 추억이 된 과거 어린 시절에 대한 ‘鄕愁’를 느끼는 것이리라.

故鄕(고향)
정지용(鄭芝溶)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港口(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동방평론 4호(1932.7) -

▶ (下)편에 계속됩니다.

[김응용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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