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

▲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 사이로 3층석탑이 보인다. (사진=최성애 기자)

쌍사자석등을 지금까지 제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가회면 주민들 덕이다. 1933년 주민들은 석등을 면사무소에 숨겼다.

일제강점기가 한창인 시절 곳곳에 있는 우리 유산을 가져가던 일본인들이 이 석등 역시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눈치챈 주민들은 먼저 석등을 숨겨놓고 195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사자 두 마리가 서 있는 곳은 참 특이하다. 영암사지에서도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인데 무지개계단(虹霓段)을 조심스레 올라야 석탑을 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발딛는 계단의 너비를 보니 크기를 보나 양옆 무지개계단은 장식용인 듯하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쳤다. 불멸을 상징하는 무지개를 건너 극락에 다다르기를 소망했던 당시 신라인들의 염원을 담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오르고자 했던 다짐을 느낄 수 있다.

홍예단을 오르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게 쌍사자다. 그 터는 ‘凸(볼록할 철)’을 닮았다. 볼록한 부분에 바로 쌍사자석등이 있다. 공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당시 사람들의 지혜에 또 감복한다.

석등을 뒤로 하고 불상을 모셨던 가람답게 터에 남아있는 조각의 흔적은 화려하다. 특히 석등 왼편으로 나있는 기단을 따라가면 그 중앙에 계단이 있는데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다. 새의 형상으로 얼굴은 사람이다.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천상의 소리라고 하여 묘음조(妙音鳥), 호음조(好音鳥), 미음조(美音鳥)라고도 하며, 극락에 깃들어 사는 새라 하여 극락조(極樂鳥)로도 부른다. 얼마나 듣기 좋기에 수려한 수식어를 한몸에 받았을까. 상상의 소리를 마음으로 들어본다.


▲ 영암사지 (사진=최성애 기자)

재미있는 설(說)은 ‘쌍사자석등이 서 있는 곳 일직선상에 제일의 명당 무지개터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해가모산재 뒤로 뉘엿뉘엿 질 무렵 무지개터엔 석양이, 쌍사자석등엔 불빛이 비치니 이 광경을 상상만 해도 황홀하다. 또한 명당의 기운을 받은 영암사지이니 영험한 사찰이라고 이름난 것 역시 마땅하다고 본다. 그야말로 신비로운 영암사지다.

대웅전 격인 영암사지 금당터엔 비석을 받치는 거북이가 위엄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사실 몸만 거북일 뿐 얼굴은 용이라고. 비석 받침을 귀부(龜趺)라고 하는데, 있어야 할 비석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비석 위에 올려 있던 머릿돌도 없다. 양옆으로 연대가 다른 귀부만이 금당의 호위장군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자 두 마리와 달리 이 둘에겐 카리스마가 넘친다.

금당터는 영암사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가려져 쉽게 찾을 수 없다. 완연한 봄이 오면 비원(秘苑)의 느낌이 물씬 날 것 같아 초봄에 들른 게 아쉽기만 하다.

한 바퀴만 돌아도 영암사는 수려한 절간이었다는 게 느껴진다. 통일신라시대를 지나 불법이 성행했던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아름다움의 극치였을 터.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조선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새로운 부활을 꿈꾸고 있다. 1984년부터 꾸준히 동아대의 조사 및 발굴을 기반으로 복원사업에 들어가고 있다. 모산재를 배경으로 화려했던 영암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날을 꿈꿔본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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