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산재 오름길

▲ 우리나라에서 제일의 명당이라고 알려진 무지개터(사진=최성애 기자)

<모산재 오름길>
영암사지~이정표~국사당~전망바위~순결바위~황매산
성 터~모산재 정상~무지개터~돛대바위~영암사지

모산재가 명당이긴 명당인가 보다. 예로부터 제일의 명당으로 알려진 무지개터도, 또한 고려 말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들러 조선 창업을 기도하러 온 국사당도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가야산이나 황매산이 아닌 일개 고개가 명당이라니 ‘작은 고추가 맵다’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보다. 각설하고 길 따라 오르는데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쉴 틈 없이 오르다보면 아주 작은 석굴이 보인다. 바로 국사당이다.

이글루처럼 돌을 쌓아올린 국사당은 조선 창업을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드렸던 제단이다. 600여 년 됐을 법한 국사당은 소박하지만 천지신명과 이성계의 위엄이 묻어난다.

바위에 걸린 밧줄에 의지해 겨우겨우 순결바위에 오르면 그때부터 눈과 마음은 호강한다. 대신 돛대바위까지 강렬한 햇빛을 피할 수 없으니 이 점은 유의해야 한다. (늦봄에서 가을까지) 강렬한 햇볕과 햇빛, 그리고 무시로 불어오는 바람을 감수할 수 있다면 순결바위가 있는 즈음에서 사방을 꼭 둘러보길 바란다.

바로 아래에 보이는 영암사지는 신묘하기까지 하다. 아래서 봤을 땐 어마어마한 가람 터 규모에 감탄하고 위에선 옆 저수지와 어우러진 터가 모산재를 지켜주는 듯해 든든하다.

또한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울퉁불퉁한 바위부터 동글동글하고 아기자기한 바위까지 한데 어우러져 그 모습도 볼만하다. 모자(母子) 거북이, 배추도사, 하늘을 향한 얼굴, 자연이 쓴 ‘소’에 올라탄 생쥐 등 다양한 바위가 있다.

왁자그르르하는 소리는 귓가에 맴도는데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바윗길을 걸으면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자칫 발을 헛디뎌 큰일을 겪을 수 있으니 말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질한다’란 말이 뼛속까지 와 닿는다.

모산재 정상에서 200m 정도 내려오면 우리나라에서 제일의 명당 무지개터에 다다른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땅은 협소하고 황폐해 보일 뿐 도저히 좋은 터라고 감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 묘를 쓰면 후손 중 천자가 나오고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한다. 하지만 나라엔 흉년이 들어 백성의 고통이 극심해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묘를 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글쎄. 정말 명당이 맞을까. 왠지 반쪽자리 명당인 듯하다. 그러다가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명당은 맞는 듯하다. 이성계 역시 무지개터에 왔을 것이다. 그저 왕이 되고자 하는 사심(私心)이었더라면 나라가 어찌 되었든 간에먼저 묘를 쓰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어지러웠던 고려 말 시대를 개혁하고 위민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그저 저 아래에 제단을 모신 게 아닌가 싶다.

태평성대가 펼쳐지는 새 시대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염원을 무지개터에서 조금이나마 느껴보았다. 무지개터는 큰일을 도모하려는 이의 마음을 알아보려는 하늘이 내려준 곳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무지개터가 주는 교훈을 뒤로한 채 돛대바위를 지나 시작과 종착지인 영암사지에 다다랐다. 모산재로부터 영험한 기운을 받은 영암사지엔 과연 어떠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 (3)편에 계속됩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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