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의재발견 주관 11월까지 계속

 

▲ 세종대왕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인 ‘영릉’의 뒷편에서 촬영한 사진. (사진제공: 세종대왕유적관리소)

8일 시작된 ‘궁궐, 왕릉 연계 조선왕조 문화 탐방’이 ‘살아 숨쉬는 5대궁 만들기, 세계유산 연계 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오는 11월 28일까지 계속된다.

(사)한국의 재발견(대표 최영환)이 주관하는 이번 체험 프로그램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김홍렬) 주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첫날인 8일 행사는 일반 초등학생과 다문화 가정, 행사 관계자를 포함해서 약 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의 문화를 꽃피웠던 ‘조선4대 왕 세종’을 주제로 경복궁에서 시작, 여주 영릉까지 이어졌다.

이 날 프로그램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던 수정전을 중심으로 경복궁에서 세종대왕의 일대기와 궁중생활을 배운 후 버스를 타고 세종대왕의 무덤인 영릉(英陵)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됐다.

▲ 영릉 전경. (사진제공: 세종대왕유적관리소)

이어 왕릉의 조성 및 구조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공부하고 재실에서 세종대왕의 위대한 과학발명품의 하나인 앙부일구 모형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다문화 가정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역사를 배우고 아울러 가족단위의 참여를 통해 서로의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돼 참여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해 개최된 이번 ‘궁궐왕릉 연계 조선왕조 문화 탐방’은 조선시대 대표적 문화유산인 궁궐과 왕릉을 찾아가는 탐방 프로그램으로 현장답사와 해설로 진행된다. 

왕릉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 왕릉의 구성, 변천과정 등을 알아보고 조선 왕릉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세계유산위원회에 조선왕릉까지 총 9건 등재

지난 6월 26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조선왕릉(40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유네스코에서는 “독특한 건축, 조경 양식과 더불어 무형의 유산인 제례의식까지 통합적으로 잘 보존관리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로써 총 9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된 우리나라는 동구릉, 광릉, 태릉, 영릉 등 수도권의 조선왕릉과 강원도 영월의 장릉까지 조선왕릉 40기 전체(북한 소재 2기 제외)를 포함하는 대규모의 세계유산군을 보유하게 됐다.
특히 종묘(1995년) 및 창덕궁(1997년)에 이어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조선왕조 관련 문화유산들이 대부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우리 문화적 우수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또한 한문화재 한지킴이,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등과 같은 사회. 지역 공동체의 참여에 의한 보존활동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영릉 전경을 비스듬히 찍은 사진, 정자각 뒤로 영릉 능침이 보인다. (사진제공: 세종대왕유적관리소)

 

영릉에 대해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며,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1469년(예종1) 여주로 천장하면서 세조의 유명(遺命)에 따라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설치했으며 봉분 안에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灰隔: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하고 혼유석 2좌를 마련하여 합장릉임을 표시했다.
또한 기존의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여 방위를 표시했는데 영릉은 이를 간소화하여 십이지를 문자로 표현했다.

영릉의 역사
1446년(세종 28)에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당시 광주(廣州, 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조영했다.
이 때 오른쪽 석실은 세종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했다.
세조대에 영릉의 자리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이곳 여주로 옮겨 왔다.
여주로 천장하면서 원래의 영릉 터에 있었던 상석, 망주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수, 신도비 등은 그 자리에 묻혔다.

영릉의 구조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능의 하나인 영릉의 구조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주산인 칭성산을 뒤로 하고 중허리에 봉분을 이룩하며 그 좌우 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능역의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신도를 따라 정자각에 이르게 된다.
정자각의 동쪽에는 수복방과 비각, 서쪽에는 수라간이 있다.
봉분 둘레에는 12면으로 꾸민 돌난간을 돌렸으며, 난간석을 바치고있는 동자석주에 한자로 12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으며, 앞에는 합장릉임을 알 수 있는 2개의 혼유석과 장명등을 놓고, 좌우에 망주석을 세웠다.
봉분 능침 주변에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를 서로 엇바꾸어 좌우로 각각 두 쌍             씩 여덟 마리를 밖을 향하여 능을 수호하는 형상으로 배치하고, 봉분의 동·              서·북 3방향에 곡담을 둘렀다.
봉분 앞 한층 낮은 단에 문인석 2쌍과 무인석 2쌍을 세우고 문·무인석 뒤에는 각각 석마(石馬)를 배치하였다.

영릉의 전시유물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건립한 유물전시관인 세종전이 있으며, 세종전에는 세종대왕의 어진과 당시에 발명해 사용한 과학기구, 악기류와 세종대에 간행된 책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세종전 앞 야외유물전시장에는 해시계, 천상열차분야지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 혼천의, 간의 등 15점의 각종 복원유물들이 전시되어있어 세종시대의 과학기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 영릉 입구에 있는 금천교와 홍살문. 금천교 앞쪽은 이승, 뒷쪽은 저승을 상징하며 홍살문 뒤로 이어지는 길의 높이가 3가지로 구분된 것에 대해 그 길의 용도가 각각 인도(人道)와 어도(御道), 신도(神道)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사진제공: 세종대왕유적관리소)

‘궁궐, 왕릉 연계 조선왕조 문화 탐방’ 프로그램 

일시:  2009년 8월 8일(토)~ 11월 28일(토)
인원: 1회당 40명 - 내국인(한국어) 입금선착순
                           외국인(영어, 일어) 신청 선착순
시간: 전일제(내국인: 오전~오후) 점심 및 음료는 각자 준비
        반일제(외국인: 오후) ※ 모든 프로그램은 오후 5시 이전에 끝남
참가비: 1인당 5,000원 (책, 기념품 포함)
입금계좌: 국민 009937-04-012046 한국의 재발견
※ 외국인은 참가비 무료 

문의) 한국의 재발견 02-723-4204 www.rekor.or.kr
         세종대왕 유적관리소 031-885-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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