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정부는 ‘응급실 전문의 당직법(응당법)’을 실시했다. 응급환자가 진료과목에 따른 당직전문의에게 전문적인 진료를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응급실 근무의사는 1차적으로 환자를 진료하되, 타과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당직전문의에게 직접 진료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이 개정됨에 따라 그나마 있던 농촌지역 응급의료센터도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최소 전문의 5명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병원을 쉽게 찾아가지 못하는 농민으로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나날이 벌어지는 농촌·도시 의료서비스 ‘심각’
복지부 “당직전문의 완화 검토중”… 발표 미정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는 농촌보다 많은 응급시설로 대거 몰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농촌은 도시보다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많아 의료서비스에 대한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농촌과 도시의 의료서비스 격차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응급실 전문의 당직법(응당법)’의 개정으로 농촌과 도시 간의 격차가 더욱 커질 전망이어서 농촌 주민들의 걱정이 크다. 이에 농촌 의료 예산 분배 및 의료비 부담 감소를 통해 종합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근처에 응급실이 없어서 죽을 뻔 했데이”
농협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농촌 의료서비스의 수급 불균형 심화와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종합병원은 90.4%, 일반 병원은 85.2%, 의원급 시설은 88.8%가 도시에 집중돼 있다.

농촌지역의 보건소와 보건지소는 더욱 열악하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공중 보건 인력도 2008년 5028명에서 2011년 2900여 명으로 감소했다. 농촌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정부가 응당법을 개정해 농촌 주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응급의료기관에서 전문의가 환자를 보도록 한 응당법이 농촌에서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개정된 응당법에 따르면 응급실을 운영할 경우 ▲최소 10병상 이상 ▲전담의사 2인, 간호사 5인의 인력 ▲일반 X선 촬영기 등 장비 등이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농촌의 경우 재정의 어려움으로 조건에 맞지 않은 대다수의 응급실이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다.

이에 국민의 건강을 보호해야 할 법이 환자를 고려하지 않은 ‘탁상정책’이 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경북도내 24개 병원 가운데 15곳이 법정기준을 미충족했다. 군 단위(청도 군위 의성 울진 등)는 물론 시(안동 영주 경산 포항 등)에 있는 병원도 포함됐다. 현재 의성군 내 3개 병원은 지난 4일 응급의료기관 지정을 반납했다.

문제는 이 같은 응급실 폐쇄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지역 주민이라는 점이다.

중풍을 앓고 있는 노혜석(51, 남, 경북 의성군 화전3리) 씨는 늦은 밤 심한 통증이 와 급히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골이라 구급차가 오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거기다 인근에 응급실이 없어 안동에 있는 응급센터까지 가는데 50분이 또 걸렸다.

노 씨는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이었는데, 치료를 빨리 받지 못해 너무 겁이 났다”며 “주변에 큰 병원이 없어 너무 불편하다”며 그날의 악몽을 회상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응당법에 대해) 당직전문의 기준을 완화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조만간에 시행 개정(안) 입법예고가 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사전에 농촌 주민의 불만을 수렴할 기구나 방안 없이 응당법부터 개정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농촌 ‘비싼 보건의료비’에 허리 ‘휘청’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인근에 병원이 없다보니 농가가 부담해야 하는 보건의료비 지출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 2011년 농가의 보건의료비(196만 6천 원) 지출이 도시가구(187만 6천 원)보다 3.2%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농촌의 의료시설이 적어 병에 걸린 농민들은 대도시로 나가야 하고 결국 교통비와 숙박비 등 추가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통계청은 분석했다.

대도시에 있는 병원을 이용하는 강정순(63, 남, 전남 구례군 마산면) 씨는 “순천 병원이나 광주 소재 대학부속병원까지 가는데 약 1시간 정도 걸린다”며 “증상이 심할 경우 서울 병원까지 나와야 한다. 시간과 돈이 상당히 많이 들고 몸도 많이 지친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반면 도시는 농촌과는 다른 분위기다. 민간의료기관, 공공의료원 등의 병원이 도시에 분포해 있어 환자들의 대거 몰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방에서 치료를 받지 못한 응급환자들도 포함돼 있다.

특히 최근에는 도시의 일반 병·의원들이 고수익을 창출하는 미용이나 성형외과의 개업으로 의료사업을 확장하면서 환자를 끌어 모으고 있다.

이렇듯 도시병원은 환자들로 북적이며 사업까지 확장하는 반면 농촌병원은 점점 수가 줄고 있어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의료시설 수요공급 문제에 따른 농촌 주민들의 입장을 더 이상 외면하고만 있으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가 적은 농어촌의 상황을 외면한 채 인구수로만 의료복지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도시는 의료서비스 과잉이, 농촌은 부족현상이 반복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각 지역의 특징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또 농어촌의 열악한 의료 상황을 알려 자발적으로 농촌에 의사들이 올 수 있게 해야 한다. 문화·교육 등 인프라 구축을 통해 농촌에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