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가 정암나루에서 왜적을 물리친 전투를 묘사한 ‘정암진의 승전’ 역사화로, 충익사 기념관에 소장돼 있다.

올해 임진왜란 7주갑 기념 국제학술대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중·일 전문가 초청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년)부터 1598년까지 7년 동안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올해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7주갑(420년)을 맞았다.

조선왕조 최대 사건‘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한국의 역사문화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 국제 전쟁이었다. 조선의 왕자를 포함해 다수의 백성이 포로로 잡히거나 살해되고, 고통을 겪었던 조선 왕조 최대의 사건이다. 7년간 지속한 전쟁은 조선, 일본, 명나라 3국의 군사 100만 명이 동원됐으며, 명과 일본 간에 이뤄진 비정상적 강화회담도 진행됐다.

이처럼 임진왜란은 한반도 전쟁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국제적 사건이자 일본 세력이 성장하는 계기가 된 첫 사례로서 중국 중심의 전통적 체제를 뒤흔들어 놓은 사건이었다.

임진왜란,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지난 9일 오후 한ㆍ중ㆍ일 석학들이 모여 ‘국제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이라는 주제로 임진왜란 7주갑을 기념해 국제학술대회를 진행했다. 대회는 한ㆍ중ㆍ일 세 나라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총 4부에 걸쳐 진행됐다.

부별로 3~4인 학자들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으며, 후반부에는 종합토론을 통해 핵심 주제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임진왜란이 동아시아 전통적 질서에 변동을 가져왔다고 판단한다. 또 임진왜란 발발 당시 국제정세가 약 300년 뒤 청일전쟁을 통해 다시 재현되면서 21세기까지 지속하고 있다고도 보고 있다.

학술대회를 개최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측은 “청일전쟁 양측 세력권의 경계에 자리한 한반도는 굴곡이 심한 근현대사를 겪었다”며 “최근 동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대립 구도도 임진왜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임진왜란을 국제전쟁의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현재 동아시아 질서와 연결 짓는 분석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대회의 취지를 요약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동아시아’라는 용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며 “동아시아의 역사적 정의와 한국사에서의 동아시아의 의미에 대한 명료한 의식 없이 반복적으로 되풀이 돼 왔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임진왜란을 민족사적 관점 바탕으로 한 연구물은 많이 누적됐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명과 일본 조정 내부의 움직임, 실태 등에 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7주갑을 맞아 임진왜란이라는 일대 사건의 시공간을 확대해 새롭게 보는 관점 또한 필요한 시점이 됐다.

임진왜란사,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임진왜란사의 인식 문제에 대한 논의는 1980~90년대부터 있었다.

조원래 순천대 교수가 ‘임진왜란사 인식의 문제점과 연구과제’라는 주제로 발표한 바로는 당시의 대체적인 논점은 ▲임진왜란의 결과가 조선 측의 패배가 아니라 일본 측의 패배였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 ▲수군통제사 이순신이나 의병장의 활동을 이해하면서 영웅 사관으로 지배돼서는 안 된다는 것 ▲군사적 전쟁사적 안목에서 구체적인 임진왜란사의 진상이 파악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 교수는 “30년이 지난 현재 임진왜란사 연구는 많은 연구 성과를 누적했음에도 여전히 주류를 이룬 연구는 의병에 의한 전쟁사 분야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한국의 임진왜란사 연구에서 의병사 분야는 종결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며 “앞으로의 연구방향과 관련해 종래에 제기되지 않았던 임진왜란사 인식상의 몇 가지 문제점부터 제기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동아시아역사연구소는 본 학술대회를 통해 임진왜란이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전쟁임을 강조하고, 지금까지 소홀했던 전쟁의 영향과 사회․문화적 변화가 조선 사회와 문화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다 면밀하게 살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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