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이 책은 저자가 1년 동안 <씨네 21>에 연재했던 에세이를 묶은 것으로, 독서와 일상,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 등 삶의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생각을 펼쳐 보인다. 저자는 이 책의 형식을 “논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필도 아니며, 굳이 말하자면 논문과 수필을 뒤섞어 놓은, 아주 특별한 의미에서 ‘에세이’”라고 밝힌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죽음에서 ‘고대의 원형’을 길어낸다. 사실 카다피의 죽음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무솔리니에 비하면 훨씬 괜찮은 편이었다. 무솔리니는 연합군이 진주하자 도주하던 중 항독 빨치산들에게 체포돼 부인과 함께 처형된 후, 둘이 함께 건물에 거꾸로 매달렸다.

물론, 카다피도 처참하긴 했다. 한때는 완전히 발가벗겨지고, 그의 시신은 ‘냉동창고’에 들어가 리비아 국민의 볼거리로 전락했다. 당시에 카다피의 시체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긴 줄은 끝도 없이 늘어졌었다.

이 사람들은 왜 굳이 독재자의 시체를 보려고 했던 것일까?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가령 폭군 네로(Nero)가 환생한다는 두려움이 <요한계시록>을 낳은 원인 중 하나라는 설명이 있다. 워낙 잔혹한 인물이었던지라 죽은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네로를 두려워했다는 얘기다. 카다피의 시체를 보려는 것은 그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한 게 아닐까.”

이제 저자의 단상은 카다피의 대척점에 서 있던 시민군 지휘부의 사고로까지 미친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카다피의 시체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결정만은 결코 우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거기에는 나름대로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 목적은 카다피의 공식적 ‘이미지’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체포된 카다피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추종자들의 향수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누리던 카리스마를 더 이상 가질 수 없으리라.”

이 대목에서 저자는 모욕을 위해서든 숭배를 위해서든 사체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대중의 은밀한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짚는다.

이처럼 저자는 자기 사유의 궤적을 내보임으로써 “당신이 그릴 생각의 지도를 보여 달라”는 요청을 한다. 책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자신만의 생각’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넌지시 제시해준다.

진중권 지음 / 천년의상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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