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지기 우정으로 국내1호 악기 ‘피앗고’를 탄생시킨 피아노제작자 서상종(왼쪽)과 피아니스트 임동창(오른쪽). ⓒ천지일보(뉴스천지)

17년 걸려 만든 특별한 소리
피아노 제작법 변용해 탄생
연주가·제작자 완벽한 호흡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선조로부터 이어진 우리 전통음악이야말로 희로애락을 승화시킨 가장 아름다운 우리 소리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소리를 가장 잘 표현하고 싶어요.”

‘우리 시대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까?’라고 할 정도로 대자연에서 풍류를 즐기며 우리 음악 속 가락에 묻혀 사는 낭만 풍류 피아니스트가 있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우리 소리를 창작해 내기 바쁜 임동창 선생을 지난 2일 서울 예술의전당 근처 야마하 상가에서 그의 20년 지기인 피아노제작자 서상종 선생과 함께 만났다.

지난달 21일 임 선생은 ‘피앗고로 듣는 중광지곡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름이 낯선 ‘피앗고’라는 이 악기는 임 선생과 서 선생의 합동 작품이다. 클래식 피아노계에서도 금기 사항에 속하는 피아노 제작법으로 탄생한 피앗고의 이야기를 두 사람에게서 들어봤다.

―‘피앗고’란 이름이 독특하다. 어떤 의미가 담겼는가.

임동창(임): 피앗고라는 이름은 서양악기를 대표하는 피아노와 우리나라 전통악기인 가야금(옛 가얏고)을 합성한 말이다. 별명은 ‘색시 피아노’다. 결혼하기 전 처녀의 설렘과 영어로 했을 때 단어 뜻인 건강한 자연미를 동시에 뜻한다.

서상종(서): 피앗고는 특별한 이름뿐만아니라 특별한 소리도 지녔다. 제작한 목적이기도 하다. 임 선생과 함께 피아노를 활용해 우리 음악을 더욱 잘 표현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17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 이는 음색을 바꾸는 작업을 거치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완성된 피앗고는 악기 하나로 우리나라 국악관현악곡인 정악을 듣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낸다.

▲ 임동창(왼쪽) 피아니스트가 서상종(가운데) 피아노제작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지난달 21일 완성된 피앗고로 선보인 첫 연주를 성황리에 마쳤다. 관객 반응은 어땠는가.

임: 관객들은 처음 듣는 음악이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만족해했다. 연주회에 참석한 탁계석 음악평론가는 피앗고 제작을 걱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리를 듣는 순간 원래 피아노 소리를 뛰어넘는다고 극찬했다.

전문가나 비전문가 모두 전통음악과 피앗고 소리가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피아노가 서양 오케스트라를 대변하는 악기라면, 피앗고는 국악관현악 소리를 대표한다고 자랑할 수 있다.

서: 임 선생이 연주를 마치고 제작자인 나에게 피앗고로 연주한 소리를 들은 느낌을 물었다. 만약 유럽에서 피앗고로 연주를 하면, 유럽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꿈꿨으나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듣는 느낌일 것이다. 피아노가 생기기 전에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던 사람들이 꿈꾼 것처럼 말이다.

―피앗고로 협주할 수 있는 국악기는 어떤 것인가.

임: 전부 할 수 있다. 피앗고는 양금 소리와 유사하다. 국악관현악에서 양금이 빠지면 소리에 빛깔이 없는 것과 같다. 피앗고는 양금 소리도 내면서 폭 넓은 음색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덧붙여 말하면 피앗고는 연주하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 원래 피아노를 쳤던 사람도 익숙하지 않은 음색을 받아들이려면 피앗고 치는 방법을 공부해야 한다.

―피앗고의 원리는 무엇인가.

서: 피앗고는 피아노의 원리와 구조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음색의 변화를 주기 위해 해머를 거칠게 만들었다. 피아노는 해머가 현을 타격하면서 소리를 낸다. 그것을 ‘타현점’이라고 하는데, 타현점이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음색과 음의 깊이가 달라진다. 해머에 양모(부드러운 양털로 만든 모(毛))를 씌우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피앗고는 이 양모 씌우는 부분을 거친 면으로 변화를 줬기 때문에 원래 피아노 소리와 차이가 난다. 양금과 같이 밝으면서도, 피아노의 특징이 살아있어 한 음에 소리 효과가 다양하게 나는 것이다.

임: 지금의 피앗고 소리를 완벽하게 찾아내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재료도 다양하게 써보고 여러 실험을 거쳐 내가 원하는 소리를 찾게 됐다.

―두 번째 피앗고 제작을 시작했다. 어떤 소리를 표현할 것인가.

임: 첫 번째 피앗고는 정악을 위한 악기였다면, 이번에는 민속악을 연주하기 위한 소리를 개발할 것이다. 정악은 점잖은 소리를 낸다. 반면 민속악은 매우 활동적이다. 악기가 완성되면 가야금산조를 연주할 계획이 있다.

서: 임 선생이 원하는 소리를 위해 이번에도 많은 시도를 할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피앗고를 제작하면서 경험한 것이 있기 때문에 훨씬 수월할 것 같다.

용어설명
피앗고:
임동창의 피아노로 유명하다.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소리가 어울리는 우리 음악을 피아노 소리로 표현하기 위해 제작된 악기다. 피아노 해머에 경화제와 아크릴 혼합제를 발랐다.

중광지곡: 거문고, 가야금, 양금, 해금 등의 현악기를 위주로 하고 대금, 세피리, 단소 등의 관악기를 곁들인 우아하고 섬세한 모음곡이다. 영산회상의 한 버전으로, 현악영산회상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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