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돌덩이만 남은 신사유구를 해마다 찾는다
[글마루=특별취재팀] 역사학자가 모르면 간첩인 일도 대중에겐 생소한 경우가 많다. 그 중 하나가 남산 일대를 파쳐 신사터로 만들어놨던 사건이 아닐까.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 영순위를 자랑하는 남산은 식민통치의 상처가 아로새겨진 곳이다.
일제는 남산 기슭에 위치한 지금의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세우고 그 건물 뒤에 있는 리라초등학교 뒤편 사회복지법인 남산원 자리에 노기신사를 세웠다.
남산원에서 30년 이상을 살아온 박흥식 남산원 원장은 “제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세심(洗心)이라 적힌 수조에서 손을 씻고 지금의 사무실에서 출석체크를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의 놀이터 위치에 신전이 있어 참배를 했다고 한다”며 “지금도 일본인들이 이곳에 매달 1~2명씩 관광을 온다. 책을 들고 오는 것을 보면 일본책이나 관광책자에 노기신사가 표시돼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인들이 신사유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 것 같으냐는 질문에 박 원장은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지 반성하는 자세는 아닌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리라초교 옆에 있는 숭의여자대학교는 경성신사 터였다. 또 숭의여대 아래 난 길(소파길)은 조선신궁으로 가는 길이었다.
일본 신사 중에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조선신궁은 지금의 안중근의사기념관 일대로 추정된다. 일제는 숭례문 근처에서 힐튼호텔 삼거리까지, 힐튼호텔 삼거리에서 조선신궁까지 도리이(신사입구에서 발견되는 일본의 전통문), 돌계단, 참도 등을 조성해 신사참배 길을 닦았다.
남산 중턱에 세워진 이 거대한 건축물은 그렇게 서울의 경관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조선인의 정기를 말살하고 신앙까지 개종코자 했던 황민화 정책의 상징 조선신궁. 이제는 역사 속 흑백사진이 되어 전설 같이만 느껴진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현실을 남산은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서울뿐 아니라 식민지 35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은 전국 곳곳에 많이 있다. 8.15광복 67주년을 맞아 가까운 곳에 남겨진 ‘식민지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가 주는 교훈이 우리의 심장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 힘도 생겨날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