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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급 독거노인 복지 사각지대서 신음
빈곤노인 절반 이상 자식 있어 정부 혜택 제외
‘가족 단절’ 판명 애매해 허점 여전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동대문구의 한 고시원에 사는 고모(75) 씨는 자식이 한 명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됐다. 뇌병변 장애가 있지만 소득이 없어 병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병원에 한 번 갈 때마다 병원비로 10만 원 이상 깨지니 여간 부담이 큰 게 아니다. 쪽방이나 다름없는 월세 18만 원짜리 고시원 방에서 그는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지역에 사는 김모(72) 씨도 홀로 단칸방 생활을 하고 있다. 무릎과 허리가 아파 걸을 때마다 절룩거리지만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딸이 있어 수급권자로 지정을 받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딸과는 연락을 거의 끊고 지낸다. 물론 금전적인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태다.

고령화 현상이 빨라지면서 독거노인의 수는 현재 120만 명 시대로 접어들었다. 복지 수요층이 커진 만큼 복지의 ‘그늘’도 여전하다. 적지 않은 수의 노인이 복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독거노인은 전체의 42.4%인 약 50만 명. 이 가운데 수급자는 23만 4천여 명이다. 절반 이상의 빈곤 노인이 수급자로 지정받지 못한 셈이다.

독거노인 중 비수급자가 겪는 고통은 더 크다. 정부가 빈곤 노인에게 주는 각종 지원이 수급자로 한정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질병이라도 생기면 더욱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고 외로움과 생활고로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율과 자살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수급 중지 결정을 통보 받은 독거노인이 자살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빈곤에 내몰린 독거노인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를 거는 것은 노인 일자리 사업이다. 월 9만 원 정도인 기초노령연금 외에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보통 20만 원 정도의 급여에 단기 근무 형태로 이뤄진다. 쓰레기 줍기 등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20만 원이란 돈은 월세나 병원비 등을 내고 나면 식비를 줄여야 할 정도로 부족하기만 하다.

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 한국노인인권센터 홍성돈 사회복지사는 “현장에 다녀 보면 수급을 받지 못한 분들의 생활이 너무 열악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며 “의식주조차 제대로 해결이 안 돼 인간의 삶이라고 보기 어려운 분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수급자는 그나마 생활이 나은 편이다. 매달 최대 45만 원가량이 수급비로 들어올 뿐 아니라 병원비 부담도 훨씬 덜하다. 보통 월세로 15~30만 원을 내고 나면 사실 남는 게 별로 없긴 하지만 노인 일자리 등으로 부족액을 보충할 수 있다. 노인돌보미인 이점희 씨는 “최소한 수급자로만 지정이 돼도 생활하는 데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연락 안되는 자식에 수급자 혜택 못받아

수급자 자격을 얻으려면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이면서 부양 의무자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 능력이 없어야 한다. 독거노인의 경우 소득인정액이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55만 원을 넘으면 수급자 기준에 미달한다. 자식 등 1촌 직계혈족인 부양의무자가 있는 경우엔 부양 능력에 따라 수급자 지정 여부가 달라진다.
문제는 가족과 실질적으로 단절됐지만, 수급 기준 미달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이다. 월세 15만 원짜리 방에서 홀로 어렵게 사는 김모(71) 씨는 서류상의 자식 때문에 수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떨어져 사는 아들 2명은 전혀 왕래가 없어 ‘있으나 마나’한 자식이다.

이 경우 보장기관에선 해당 부양 의무자의 부양 능력을 판단해 소명을 요구한다. 부양 의무자가 소명에 불응하면 가족관계 단절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점희 씨는 “홀로 사시는 노인 중에는 가족 갈등을 겪는 분들이 많다”며 “수급 신청을 위해 소명 확인을 받으려 해도 자식들이 증오심 때문에 아예 만나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관계자는 “(가족과 단절된 노인의 경우) 먼저 보호를 해주고 해당 비용에 대해서는 구상권을 행사하는데, 가구의 특성이나 부양 의무자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부양 비용 징수 여부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복잡 미묘한 가족 관계 속에서 단절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용산구 청파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가족과의 단절 여부를 평가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젊은 층의 생활수준이 괜찮아도 사교육비나 여러 가지 지출로 부모에게 줄 돈이 없는 경우도 있다. 어느 단편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이 같은 수급 기준 평가가 다소 형식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홍 사회복지사는 “공무원 쪽으로도 예산을 투입해서 실제 수급이 필요한 독거노인을 발굴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늘려야 할 것”이라며 “책상에 앉아 일률적으로 점수화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한노인회 중앙회 이성록 사무총장은 “수급 기준은 원칙대로 적용하되, 특정사례의 경우엔 현재 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수급권을 보장해주는 형태가 현재로선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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