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
― 嘉昌 冷泉에서

상희구(1942~ )


맞춤 뻐꾸기가 하도
유난시럽기 울어쌌길래
힐깃 한 번 그쪽을
돌아다바실 뿐인데
맙시사! 참꽃이 왼통
온 산을 붉은 끼로 흥거이
퍼질러 놓았더마는

시평)
봄은 꽃과 함께 시작한다. 생강꽃이 피고 나면, 이내 산수유가 그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산수유가 지고 나면,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이내 벚꽃이, 살구꽃 등이 화사하게 핀다. 봄은 정말로 꽃들의 잔치마당이다. 뻐꾸기가 유난스럽게 우는 것과 참꽃, 곧 진달래가 온 산에 핀 것은 실은 아무러한 연관이 없다. 그러나 뻐꾸기 울음소리에 그만 고개를 돌려 뻐꾸기 우는 곳을 바라보니, 맙소사 온통 봄 산으로는 진달래가 흥건하게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봄이 왔는지, 그래서 꽃이 피는지, 또 꽃이 지는지도 모르고 지나는 때가 비일비재하다. 먼 산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온 산을 흥건히 물들여 놓는 진달래는 우리의 바쁜 생활 속 잊어버리고 있던 그 봄의 싱그러움을 일깨워주는 전령이 된다. 그리하여 바쁜 삶 속, 잠시나마 싱그러움의 잔치마당 그 한가운데, 우리 스스로 새봄의 주인이 되어서 있게 하는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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