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산 잿머리 성황당. 한 무당이 의식을 치르고 있다. (사진제공: 안산시)


무교, 고대엔 종교이자 정치권력
막강한 권력 위해 천신과 교류가 필요해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신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추구했던 무교. 무교에는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이 있었다. 지금은 무당이라는 명칭이 익숙하다.

이 무당은 성무와 입무 과정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된다. 강신무와 세습무다. 강신무는 신내림 과정에서 신병을 앓은 무당이며 세습무는 부모 중에 무당이 있어 태어난 자녀가 자연스럽게 이를 세습한 무당이다.

세습무의 활동은 종교보다 치리적인 성격이 더 짙었다. 마을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전라도에서는 이러한 무당을 ‘당골’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활동권은 자기가 담당하는 마을로 제한됐다. 이들을 통해 마을의 대표적인 제사를 지내기도 했는데, 이곳을 서낭당, 성황당, 국사당 등으로 불렀다. 오색의 헝겊, 쌀, 떡, 명태 등을 걸어 신당처럼 꾸미기도 했다.

반면 강신무는 신병(神病)을 거치게 되는데, 무병(巫病)이라고도 하는 이 병은 신접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처음에는 신과의 교감이 전혀 없는 ‘신들림(신병: 神病)’ 상태로 시작한다. 이후 신과 교감을 형성하는 ‘신내림’, 신과의 교감이 확립된 ‘신들림(성병: 成病)의 흐름을 거친다. 다시 말해 신을 몸에 모시면서 겪는 하나의 과정이다. 치료는 종교적으로만 가능하다. 유형은 몸이 마르거나 시름시름 앓거나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신을 몸에 내림받으면 이 병이 없어진다고 한다.

강신무는 사람이 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기에 피할 방법이 없다. 택함 받은 자가 되면 신을 몸에 모시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무병을 앓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신을 내려 받게 되는데, 이 때 치르는 의식이 강신굿이다.

이러한 무당을 중심으로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신의 뜻을 물어 인생사에 적용하는 것이 무교다. 고대 국가에서는 이 무당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 무당을 통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다. ‘삼국지’에 기록된 우리 민족의 풍습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 무당이 천군(天君) 제기장(祭杞長) 이라고 기록돼 있다. 당시 무당들은 국가·사회적으로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었다. 제사장으로 치병자, 왕의 자문에 응하거나 왕의 요청에 의해 점복을 보고 신의 뜻을 전하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알리는 예언자의 역할을 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게 된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화랑도의 근본정신도 무의 정신이었다.

초기 무교는 국가가 발전함에 따라 국무(國巫)와 민간 무당으로 나뉜다. 이후 유교, 도교, 불교 등이 전래되면서 국무로서의 역할이 위축된다. 특히 고려시대 불교나, 조선시대 유교 등 강세를 보이며 무교는 민간신앙으로만 명맥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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