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9년 10월 서울시 광진구가 주최한 '2009 아차산 고구려 축제'에서 고구려의 제천의식인 '동맹제'가 재현됐다. (사진 제공: 서울시 광진구)

태왕사신기․주몽 속 신녀, 절대 권력자… 하늘의 뜻 왕에게 전해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광개토태왕의 행적을 극화한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2007년 당시 인기리에 방영됐다. 배용준이라는 한류스타의 출연과 영화 못지않은 스케일도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지만, 천손민족의 자부심이 드라마 곳곳에 묻어나 우리 국민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태왕사신기는 강서고분벽화의 사신도에 있던 가상의 존재인 사신(四神)을 등장시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재조명했다. 거기에 신과 교류하며 나라의 흥망성쇠를 손에 쥐었던 신녀(가진 역 문소리)의 등장은 극적 흥미를 더했다. 특히 신녀는 당시 무교가 사회의 큰 축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가늠케 했다.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을 그린 드라마 ‘주몽’에서도 부여국의 신녀가 등장해 흥미를 더했다. 우리나라 상고사를 그리는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는 이처럼 제천의식과 무교 문화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고대국가들은 나라의 번영과 평안을 위해 해마다 제천의식을 드렸고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제사를 인도한 신녀 곧 무녀가 존재했다. 당시 신녀의 지위는 왕에 버금갔다. 제사를 인도한 신녀는 나라의 길흉화복을 점칠 때나 중대사를 결정할 때 마다 하늘의 뜻을 물어 그 답을 왕에게 전했다. 적어도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신녀는 왕권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과학이 발달하고 기독교 신자가 늘면서, 미신이다, 귀신들렸다며 무당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지만 나이든 부모님 세대는 물론 많은 젊은이들도 무당을 찾아가 신점을 보고 앞날을 점친다. 왕을 좌지우지 하던 무녀에서 범인의 신점을 봐주는 무당이 됐지만, 무(巫)에는 우리 민족과 동고동락한 세월이 녹아있다.

◆고대국가 제천의식 ‘종교·문화 풍습’ 고스란히 담겨

고구려의 동명,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삼한의 계절제 등 고대국가들의 제천행사를 살펴보면 저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하늘에 제를 올렸음을 알 수 있다. 각기 그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하늘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를 향해 제사를 지내고,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춤과 노래로 기쁨을 누리는 모습은 비슷하다.

고구려에서 10월에 행하던 제천의식 ‘동명(東明, 동맹이라고도 함)’은 일종의 추수감사제로 국조신에 대한 제사의식이라는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삼국지 위지 고구려조에 따르면 10월에 지내는 국중대회(동맹) 때는 수도의 동쪽 물가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나무로 만든 수신을 신좌에 모신다. 수신의 성격에 대해서는 단군신화의 웅녀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수신을 맞아 수도 동쪽 물가에서 제사지냈다는 것은 동명신화에서 하백의 딸 유화가 해모수와 하나됐다는 구성과 연관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동맹은 풍년이 들기를 빌고,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늘에 감사하는 농제(農祭)이기도 한데, 여러 귀신, 사직신, 영성에게도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영고는 초기 부족연맹체 국가인 부여에서 행했던 집단적 제천의식으로 추수를 마친 12월에 온 나라의 백성이 동네마다 한 데 모여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의식 직전에 ‘맞이굿(영신제)’을 벌였는데 며칠 동안 계속 노래하고 춤추며 음주를 즐기고, 죄가 가벼운 죄수를 풀어줬다고 한다.

하늘 섬긴 민족의 자취
고대국가, 다양한 제천행사 행해
무, 신녀는 제사 주관한 제사장

무교는 종교이자 문화
민속문화 뿌리 다수는 ‘무속’
무춤 살풀이는 가장 출중한 춤

무천은 동예가 매년 10월에 하늘에 드린 제천행사로, 중국 돈황문서 내 토원책부 주석에 고조선의 풍속으로 동예에 무천이 열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무천도 동명, 영고와 같은 비슷한 제천의식을 드렸다.

삼한(마한, 진한, 변한)에서도 해마다 씨를 뿌리고 난 뒤인 5월의 수릿날(오늘날 단오)과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10월에 계절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이러한 제천의식 때에는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날마다 음식과 술을 마련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겼다고 한다. 삼한(마한, 진한, 변한)에는 국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 지역인 소도(蘇塗)라는 곳이 있었다. 소도는 신녀 등이 머물며 천제를 올리던 장소로,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쳐도 잡아갈 수 없었다.

마치 그리스·로마의 아실리(Asillie) 또는 아실럼(Asylum)과 비슷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풍속은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다. 소도에는 영고(鈴鼓, 방울북)를 단 큰 나무를 세웠는데, 이 풍속은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다. 마을 입구나 신당에 세우는 솟대가 바로 그것이다. 이 같은 상고시대 부족국가들의 제천의식에는 종교·문화·생활 등 제정일치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교, 한민족의 가장 고유한 종교”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고,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며, 고난을 당할 때에는 영혼숭배자이다.”

조선시대 말에 우리나라에 기독교를 전파한 선교사 헐버트가 남긴 말이다. 그가 바라본 한국인은 종교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며 생활에서도 종교성이 깊게 배어있다는 것이다. 헐버트가 한국인들에 대해 ‘영혼숭배자’ 곧 샤머니즘 사상이 짙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인들의 생활 속에 무속신앙(무교)이 자리 잡고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무교가 무엇일까라는 의문점에 빠지게 된다.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한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최준식(한국학과) 교수는 무교를 종교라고 주장한다. 최 교수는 “무교는 한국인의 가장 고유한 종교”라며 “무당은 신을 모실 때에도 보낼 때에도 노래와 춤으로 한다. 이 노래와 춤을 통해 무당은 망아경(신과 하나 되는 신비한 체험)으로 들어가고 그 상태에서 신을 받아 신의 말씀을 전하게 된다”고 무교의 종교성을 주장했다. 최 교수는 “종교학에서는 결코 미신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하나의 신앙 체계를 한낱 미신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자기 종교의 시각으로만 보는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민속 문화는 그 뿌리를 캐다 보면 마지막에는 무교로 귀결되는 게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민속 예술 가운데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악은 판소리다. 대표적인 독주곡은 산조, 가장 출중한 춤은 살풀이춤”이라며 “이 세 장르의 예술은 가히 세계적이라 어디다 내놓아도 뒤지지 않다. 그런데 이것들이 어디서 나온 건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남도의 시나위 굿판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인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은 2009년 판소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이처럼 우리 민족이 고대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손민족임을 우리는 여러 문헌과 문화유산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허나 상당 부분이 미신으로 터부시되어버려 우리 민족이 하늘의 장자요, 천손민족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고대로부터 내려온 제천의식의 모습과 형태는 바뀌었다고 하나 초월적인 존재를 향한 갈망과 기다림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열망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 또한 우리 민족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손임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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