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술 정치컨설팅 그룹 인뱅크코리아 대표

지금 민주통합당에서는 ‘진보’와 ‘중도’를 둘러싼 정체성 논쟁이 뜨겁다. 총선패배의 원인이 지나친 좌클릭으로 인한 중도층의 표심이탈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환 의원은 지난 20일 홈페이지를 통해 ‘2012 대선일기’라는 글을 올렸는데 이 글을 살펴보면 “우리는 총선에만 진 것이 아니라 총선 이후에 더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총선의 아우성이 사라지기도 전에 독선․교만․아집이 판을 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선거가 끝난 지 열흘이 지나도 제대로 된 총선 평가, ‘내 탓이오’의 자기반성이 없는 정당이 수권할 수 있을까”라고 말을 이었다. 김영환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의 패배에 대해 “우리의 적은 명명백백히 새누리당도 박근혜도 아닌 우리 자신”이며, “민주당의 쇄신이 선결이고 본질”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내에서도 이번 총선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지나친 ‘좌클릭’ 때문이라는 평가와 함께 중도 색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권연대를 이루기는 했으나 지나치게 통합진보당에 끌려다니며 급진 노선의 선택으로 중도층 이탈을 가져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상임고문은 원론적인 차원에서 “중도강화론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당이 좀 더 폭넓게 지지를 받으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밝혔으며, 우윤근 의원은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해야 한다”며 중도 강화론에 힘을 실었다.

또한, 전병헌 의원의 경우 “지금처럼 진보당에 끌려가기보다는 당의 정체성을 보여주면서 협력관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했고, 우상호 당선자 역시 “중도적 색깔이 미흡했는데 이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 민주통합당에서는 지나친 좌클릭에 대한 중도강화론에 대해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인영 최고의원은 최고위원회에서 “99% 서민들의 삶 속에 중간은 없다”며, “양극화 문제가 지속되는데 중도는 어떤 방향을 설정할 것인가. 당 정체성이 어디에 문제가 있고, 진보당에 휘둘린 건 무엇인가”라고 반발했다. 또한, 문성근 대표대행 역시 20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총선을 거치면서 유권자들과 대화한 내용을 반영하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좌냐 우냐로 논쟁할 것이 아니다. 그게 논점이 되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체성 논쟁의 중심에는 이번 총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론이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가 오히려 선거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는 필자가 보기에도 맞는 말이다. 누가 보더라도 총선에서의 민주통합당의 정체성은 좌파적 성향이 강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FTA폐기론, 제주 해군기지 폐기론,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미온적 자세, 모바일 경선의 문제점으로서 광주 동구 전직 동장의 자살사건, 나꼼수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 등이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의 대형 악재(惡材)였다.
하지만 필자는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중도층이 반드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나치게 가치편향적 시각을 가진 정당은 국민을 불안하게 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무조건적 반미․친북과 같은 이념논리로 본다면 더 그렇다. 그러나 민심을 움직이는 것은 비단 이것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민심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국민을 위한다는 ‘진심’이다. 민심은 천심이라 하지 않던가!

지난 18대 국회에서 서민과 민생을 외치던 정치권이 민주통합당이나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이나 국민에게 보여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되돌아 보면 알 만도 할 것이다. 폭력국회와 이념국회, 막말국회 아니었던가 말이다. 18대 국회에서 민생이 어딨고, 서민이 있기나 했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민주통합당이 수권정당으로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말만 앞세운 허울뿐인 서민정당,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이념정당이 아니라 자기반성과 자기 쇄신을 통해 수권정당으로서의 ‘대안정당’, ‘정책정당’, ‘희망정당’으로 국민에게 그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로지 MB심판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 이념에 얽매인 어젠더를 추구해서는 민주통합당에 희망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면에서 김영환 의원이 말한 “당 지도부는 여의도공원이 아니라 죽음의 현장, 민생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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