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천지스페셜

전라북도 진안 ‘마이산’ 

 

자연의 신비는 이루어 말할 수 없다. 신이 빚어낸 오묘한 미(美)는 사람이 감히 형용할 수 없는 멋이다. 게다가 사계절인 한국의 자연은 외국보다 깊은 멋이 있다. 그리고 신을 앙망하는 전설과 선조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연과 선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아니 이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한 신의 이야기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천지TV 탐방팀은 전국방방곡곡 명산을 다니면서 자연에 숨긴 그 의미를 찾기로 했다. 

 

마이산의 ‘일월오봉도’

이번 답사 일정 가운데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마이산 여정이 있었다. 한국의 미스터리 지역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마이산. 그 생김새부터 한반도에 있는 일반적인 산과 달라 눈길을 끌지만 무엇보다 조선왕조의 처음과 끝을 함께했기에 이에 걸맞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태조 이성계의 ‘몽금척(夢金尺)’, 이갑용 처사의 ‘석탑군(石塔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자료를 접하게 되자 마이산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궐내에서 왕의 뒤에 묵묵히 서 있던 병풍, 일월오봉도가 마이산을 근간으로 해 그려졌다는 설을 접하게 됐다. 자료를 찾고 찾았지만 정확한 자료는 없었다. 다만, “일월오봉도가 마이산을 형상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는 진안군에 적을 두신 어르신들의 말만 있을 뿐이다. 이즈음, 기자는 마이산이 아닌 병풍 앞에 왕이 존재해야만 완성되는 일월오봉도에 관심을 두게 됐다.

명칭도 여러 가지  
일월오봉도는 태생부터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어느 왕대에 누가 그렸는지 등 병풍 도안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1632년 선조비인목후(宣祖妃仁穆后) 국장도감의궤(國葬都監儀軌) 인조 10년’에 ‘오봉산병(五峯山屛)’이란 이름으로 처음 나타난다. 이후 조선 후기 기록엔 ‘오봉병(五峯屛)’으로도 남아 있다. 그림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현재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에 있는 병풍을 포함해 20여 점이 남아 있다는 것밖에 없다.  

왕의 그림은 일월오봉도, 일월오악도, 일월오병도, 일월곤륜도 등 불리는 이름이 다양하다. 해와 달이 있어 일월(日月)이라는 점은 알겠는데, 대체 다섯의 뫼는 봉우리(峯)인지, 바위산(嶽)인지, 또는 병풍(屛)인지 의견만 분분하다. 다만, 학자들이 도안의 의미와 가장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일월오봉도와 일월오악도가 작품명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조금 더 대중적으로 불리는 ‘일월오봉도’를 택했다.

왕의 병풍으로 간택되다
동시대의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교할 때 일월오봉도와 같은 의미가 있는 작품이 없다. 혹자는 회화가 중국과 연관이 깊다고 말하고 있으나 중국 궐내에서 그려진 흔적이나 남겨진 기록이 없다. 즉, 국가의 염원을 담은 그림으로 조선왕조의 일월오봉도가 유일하다는 이야기다. 당시 일본과 중국의 어좌 뒤엔 산수화나 성의 배경이 담긴 그림, 또는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 또는 용 등 치리자의 상징적인 그림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일월오봉도는 조선이 유교적 이상 국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역성혁명이 하늘의 뜻이며, 왕이 위로는 하늘을 섬기고 아래로는 백성을 보살피는 성군의 정표이자, 고려 왕조와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왕권의 상징물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월오봉도가 병풍형식으로 어좌 뒤에 배치된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왕을 수호하는 무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옥새와 마찬가지로 왕권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완성의 그림
일월오봉도는 유가적 통치원리에 따른 천명을 나타내는 동시에 우주를 표현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삼재사상(三才思想)으로 회화가 ‘미완의 작품’임을 설명할 수 있다. 삼재는 천(天), 지(地), 인(人)을 가리킨다. 점을 치는 원리와 해석을 설명하고 있는 주역의 ‘계사전’은 괘(卦)에 6개의 효(爻)가 있는 이유를 “천도(天道)와 지도(地道), 인도(人道)가 있으며 삼재를 겸하여 이를 둘로 하여 6이라고 한다”고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천지자연과 인간은 대립해서 살 수 없으며, 인간은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재사상을 근간으로 본 일월오봉도는 천지만을 표현했기 때문에 완성된 그림으로 보기 어렵다.

회화가 미완의 작품이라는 근거를 더 찾아보자. 병풍에 그려진 해와 달은 하늘을, 다섯 개의 봉우리와 굽이치는 물결은 땅을 나타낸다. 따라서 왕의 존재는 세계(인간세상)와 우주(자연)의 정점에 위치한다. 천지인을 하나로 통일하는 매개자인 셈이다. 미술사학자 오주석(1956~2005) 씨는 ‘한국의 美  특강’에서 일월오봉도가 음양오행 사상에 입각한 그림으로, 병풍 앞에 임금이 앉을 때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삼재, 즉 우주를 이루는 세 바탕이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이어 삼재를 관통하는 대우주의 원리(三)가 사람이라는 소우주(丨)속에서 완성(三+丨=王)된다고 덧붙였다.

한 폭이든지 여러 폭이든지 해와 달, 다섯 산봉우리, 소나무 두 그루, 물결의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삼재사상뿐만 아니라 오악신앙, 도교사상, 음양오행사상이 융해돼 있다. 다섯 산은 오악신앙을 떠올릴 수 있다. 오악은 시대에 따라 구성이 바뀌었다. 신라시대의 오악은 토함산, 계룡산, 지리산, 백두산, 삼각산을, 조선시대는 삼각산, 백두산, 묘향산, 지리산, 금강산을 가리켰다.

오악의 역할은 국가의 발전과 안녕을 지켜주는 존재로 신성시됐다. 산을 중하게 여겨 왔던 때는 고대부터다. 땅에서 가장 높으면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산이기 때문이다. 곧, 산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산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祭壇)이 있고 오래전부터 산을 신성하게 여겨 왔다. 신시(神市)를 베푼 태백산, 중국의 영산인 곤륜산 역시 성소로 꼽힌다. 산은 공간적으로 거룩하고 높고 중심이 되는 장소다.

이러한 신성한 곳에서 왕은 하늘의 뜻을 받아 나라를 주관했다. 하늘이 간택한 왕은 자의가 아닌 공의공도에 서서 백성을 돌보고 살펴야 할 덕목을 갖춰야 했다.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군주의 덕을 칭송하는 시경의 천보(天保)에서 일월오봉도에 등장하는 해와 달, 산, 물, 소나무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를 빌려 볼 때 회화는 왕을 해, 달, 산, 물, 소나무에 비유해 변함없고 영원무궁토록 번창하기를 기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월오봉도. 비록 진안군에 있는 마이산과의 관계성을 찾지 못했으나, 600여 년간 조선왕조를 지킨 수호도(守護圖)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도안은 기교가 없고 단순하지만 우주를 담고 있다. 그리고 하늘이 허락한 단 한 사람이 그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도 찾을 수 있었다.

조선왕조가 끝나면서 군주제가 아닌 대통령제로 시대가 바뀌었지만, 국사를 돌보는 수장이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일월오봉도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늘은 어떠한 사람이 세워지기를 바랄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백성이 곧 하늘’이라고 한다면 백성 즉, 국민의 마음을 시원케 할 지도자가 아니겠는가. 올해 대선을 치르기 전에 일월오봉도가 말하는 지도자상을 한번쯤 그려보기를 바란다.

(영상취재: 손성환·이승연·최성애, 글: 김지윤·이승연, 사진: 최성애, 내레이션: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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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스페셜 - 전라북도 진안 마이산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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