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건이 있다. 바로 지하철 안에서 일어나는 볼썽사나운 모습에 대한 이야기다. 며칠 전에도 ‘4호선 막말녀’ 동영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일이 있었다. 영상에 따르면 지하철을 타고 있던 한 남성이 실수인지 좌석에 앉아있던 젊은 여성의 발을 잘못 차게 됐고, 이어 미안하다는 제스처로 보이는 행동을 취했다.

그러나 남자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은 계속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고 남성도 참기 힘들었는지 함께 욕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감정이 격해진 두 사람은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했다. 보다 못한 주변 승객들의 만류로 겨우 싸움을 멈출 수 있었지만 싸움을 말리는 과정 중에 한 남성은 머리채를 잡히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몇 달 전, 사람들 통행에 방해가 되니 꼬고 있던 다리를 풀어달라던 노인에게 폭언과 막말을 서슴지 않았던 일, 아이가 예쁘다며 만지려 하니 ‘어디에다 손을 대냐’며 욕설을 퍼부었던 아이 엄마 등 지하철 안에서 일어나는 추태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의 발단은 그리 큰일이 아니다. 별일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이런 일들이 왜 이리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비단 이런 일이 지하철 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어디에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를 미연에 방지할 뾰족한 수도 딱히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요즘 사회를 보며 ‘살아가기 참 팍팍한 시대’라고 말한다. 평생을 부지런히 일해도 내 집 하나 마련하기 힘든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겪어온 일이요, 막상 좋은 대학을 나와도 마땅히 일할 자리가 없어 청년백수가 태반인 실정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 중 상당수는 하숙비와 자취비가 너무 비싸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저출산 고령화시대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이른 나이에 퇴직해 오랜 시간을 일정한 직업 없이 여생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도 많다.

이렇듯 일하고 싶어도, 아직 일할 수 있음에도 일자리가 없어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생각만 해도 팍팍한 사회요, 한숨밖에 안 나오는 현실일 수 있겠다. 상황이 이렇다지만 어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가짐마저도 팍팍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지 않고서는 아이들을 양육하기 어려운 고물가시대에 부모의 직접적인 통제가 불가능한 아이들은 마음 둘 곳을 잃기도 한다. 내 자식만 귀하다는 생각에 ‘오냐, 오냐’ 하며 키우다보니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 보기를 돌 같이’ 보는 아이들도 많아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저마다 모습은 다르지만 지하철 안에서 일어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나,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따돌림 등은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했기에 생겨난 폐단이 아닌가 한다.

모든 이들에게 해당된다고만은 할 수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어려움과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부유한 자는 부유한 대로, 가난한 이는 가난한 대로 저마다의 고민과 고통, 어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 같은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적잖게 만날 수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이겠는가.

물론 나를 이끌어주는 좋은 스승이 있었다거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을 수도 있다. 허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가짐이라고 본다. 내가 처한 현실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현실을 뛰어넘으려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단지 ‘운이 좋아서’ 잘 된 것이 아니라 노력했기에 행운의 여신이 찾아온 것임을 알았으면 한다. 작은 일에 나를 주체하지 못해 분노하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병들게 하는 내 안의 악한 모습과 싸워 이겨야 한다.

‘너 때문이야’가 아닌 ‘나 때문이야’라는 생각을 가질 때에 서로를 배려하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허나 이 말을 이렇게 한 번 바꿔보면 어떨까. ‘너 때문이야’도 ‘나 때문이야’도 아닌 ‘네 덕분이야’로 말이다. ‘그나마 이 정도밖에 안 다친 것도 다 염려해준 네 덕분이야.’ 삭막하다가 절로 나오는 이 시대에 이런 말 한 번 들으면 힘이 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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