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이 1월 31일 은퇴 기자회견 중 눈물이 흐르자 감정을 다스리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 한국축구 주요 페이지 장식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1990년대 후반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반지의 제왕’ 안정환(36)이 결국 그라운드를 떠난다.

안정환은 지난달 31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한국을 포함 6개국(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독일 중국) 8개 구단의 옷을 바꿔 입으며 뛴 14년간의 축구 생활을 마무리했다. 화려하면서도 뜻하지 않게 저니맨의 생활이었다.

지난해 중국에서 3년간의 선수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안정환은 K리그 복귀와 은퇴를 놓고 고심하다가 결국 축구화를 벗는 것으로 결심한 것이다.

1998년 K리그 데뷔 이래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축구의 큰 족적을 남긴 안정환의 은퇴는 많은 팬들에게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달 러시아 생활을 정리하고 5년 만에 K리그로 돌아온 김남일(인천 입단)의 복귀에 이어 안정환까지 가세할 경우 2002년 월드컵 멤버들의 귀환으로 작년 승부조작 사건으로 한 풀 꺾인 K리그의 인기를 상승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성남 일화도 안정환의 입단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칼자루를 쥐고 있었던 안정환은 끝내 외면했다.

일각에서는 안정환이 K리그로 복귀(수원 입단)한 2007년 당시 전성기 기량을 보이지 못해 2군으로 내려가 치른 경기에서 FC서울 팬들과 충돌을 한 탓에 좋지 않았던 기억이 복귀에 걸림돌이 된 것으로도 보고 있다.

그래도 안정환의 활약은 한국축구사에 주요 페이지를 장식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진 않을 듯하다. 1998년 프로무대에 데뷔해 이동국, 고종수 등과 함께 많은 여성팬들을 축구장으로 불러 모아 K리그의 전성기를 이끈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해 우리나라가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하는 등 16강에 탈락하자 주춤했던 분위기를 안정환 등의 스타 등장은 이를 단숨에 반전시켰다.

화려한 발재간으로 안정환은 해외진출이 거의 없던 시절인 2000년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무대를 밟는 데 성공한다. 페루자에 입단하며 유럽무대를 경험한 안정환은 2002년 이탈리아와 16강전 연장 종료 직전 그림 같은 헤딩골로 한국축구를 8강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뜻하지 않게 여러 팀을 옮겨 다녀야 하는 불행 아닌 불행이 되고 만다. 그 골로 인해 안정환은 이탈리아를 탈락시킨 ‘괘씸죄’로 페루자에서 방출됐고, 이후 일본 J리그의 시미즈와 요코하마를 거쳐 프랑스 메츠, 독일 뒤스부르크 등을 옮겨 다닌다. 그러다가 국내에 복귀해서는 팬들에게 실망을 안긴 채 중국 무대로 떠나는 등 사실상 축구인생이 살짝 꼬이고 만다.

그래도 대표팀에서의 안정환은 좋은 기억을 남겼다. 한일월드컵 1주년을 기념해 가진 2003년 한일전에선 막판 극적 결승골로 한국축구 최고의 해결사로 등극했다.

이로 인해 안정환은 4주 군사훈련을 받는 도중 아르헨티나와 A매치 경기를 앞두고 국방부 최초로 1박 2일의 특별휴가를 받고 대표팀에 합류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도 벌어진다. 비록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스트라이커 부재에 워낙 시달리다보니 안정환을 원하는 팬들의 강력한 요청에 대한축구협회가 국방부에 협조를 구한 덕분에 성사된 해프닝이었다.

또 안정환은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와 본선 1차전에서 후반 특유의 터닝 중거리슛으로 역전골을 성공시켜 한국축구 사상 원정 첫 승이라는 쾌거를 올리는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안정환은 박지성과 함께 한국선수 월드컵 최다골(3)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이같이 화려하면서도 파란만장한 족적을 남긴 안정환의 은퇴는 팬들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