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가이자 미술평론가 하정웅 선생.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하정웅 기증전’을 지난해 11월부터 이달 31일까지 진행한다. 사진은 전시회장에서 작품을 소개하는 하 선생의 모습 (사진제공: 국립고궁박물관)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앤디 워홀, 피카소, 샤갈 등 이름만 들어도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거장들의 미술 작품을 망설임 없이 조국에 있는 미술관에 기증한 사람이 있다. 바로 재일교포 2세 출신의 사업가이자 미술평론가인 하정웅(73) 선생이다.

지금까지 7000여 점의 미술품을 수집해 온 그는 세계 거장들의 미술품뿐 아니라 한국과 북한, 중국 무용계에 영향을 미친 최승희의 사진작품 및 영친왕 내외 유품 등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기여도가 높은 작품을 중심으로 수집해 왔다.

자신도 “제 취향에 맞게 미술품을 수집했다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또 선조의 얼과 정신이 깃든 작품을 위주로 수집해 온 것”이라 말했다.

25살 청년 시절부터 시작된 작품수집. 하지만 그 속에는 재일교포 2세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주노동자의 아들로 1939년 일본 히가시오사카에서 태어난 하 선생은 굴곡진 청년기를 보냈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극심한 차별과 가난은 어릴 적부터 꿈꿔온 화가의 길마저 포기하게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미술학도의 꿈을 버리고 사회초년생이 된 하 선생은 조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욱 열심히 부지런히 일했다고 한다.

그는 “재일교포 2세는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좋은 시각으로 봐주질 않아요. 그게 참 가슴 아프죠.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사회초년생에서 사업가의 기반을 다질 즈음 그는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난한 동포 화가들의 그림을 사들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거장들의 작품까지 수집하는 등 소장품은 날로 늘어났다.

그러다 지난 1993년 전남 영암이 고향인 부친을 위해 잠시 광주에 들렀다가 건립된 지 얼마 안 된 시립미술관을 보고 처음 자신의 소장품을 기증했다. 당시 미술관은 건물만 덩그러니 있고 이렇다 할 전시작품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소장품을 기증했다고 한다.

광주시립미술관에 총 2222점을 기증한 하 선생은 포항·부산·대전시립미술관과 전라북도도립미술관 등 전국 각지에 소장품을 기증하기 시작했다.

올 4월에는 부친의 고향이자 자신의 고향인 영암에서 ‘영암군립河미술관’이 개관한다. 하정웅 선생의 하(河)자를 딴 군립미술관으로 그의 기증품 2500여 점도 함께 전시된다.

자신의 이름을 딴 군립미술관 개관에 하 선생은 누구보다 가슴이 벅차다. 굴곡진 인생으로 화가의 꿈은 포기했지만 자신의 고향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미술관이 건립된다는 것은 너무나 꿈같은 일이라는 것.

하 선생은 “재일교포 2세로 이렇게 큰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전 참 행복한 재일교포입니다. 고향에서 저를 이렇게 받아 주고 환영해 주는 것에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인터뷰 말미에도 하 선생은 자신의 감사함을 꼭 고향민이 알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평생 모아온 7000여 점의 미술품은 이제 그의 곁에 없다. 대신 우리나라 전역의 미술관으로 흩어져 전시실 조명 아래서 자신만의 빛을 발하고 있다.

기증품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그는 굴곡진 역사를 거쳐 온 산 증인의 역할을 기증을 통해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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