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북한 최고 지도자의 사망은 이슈로 급부상한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에 찬물을 끼얹었다.
러시아는 최근 들어 북한과의 관계 강화에 공을 들여왔다. 지난 8월 말 러시아는 양국 관계 급진전의 최대 분수령이 된 북·러 정상회담에서 다양한 분야에 걸친 협력 사업을 추진하기로 북한과 협의했다. 이때 러시아 측이 방점을 찍은 항목은 단연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이었다.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북한을 경유해 한국으로 이어지는 가스관을 건설함으로써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한국으로 공급한다는 게 이 사업안의 골자였다. 현재 양측은 내년 4월까지 가스공급 협정을 체결한 뒤 2013년 9월까지 가스관 노선 설계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같은 해 9월부터는 가스관 건설을 시작하고 2017년 1월부터 가스공급을 시작한다는 로드맵도 도출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안은 ‘북한 체제가 안정적일 때’를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사망이 가스관 사업 등 북·러 연계 프로젝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김정은의 후계 구도가 불안정해질수록 러시아의 사업 계획은 현실성이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극동지역 진출을 꾀하던 러시아의 꿈이 어그러질 가능성은 농후해진다. 더 나아가 북한 체제가 흔들리면 북핵 문제가 불거진다는 점도 러시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 체제 안정을 위한 러시아의 공조 움직임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박종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교수는 “러시아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북한에 대해서 적극적인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김정일 사후 김정은 체제하에서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대북 영향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극동 지역 개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 등 굵직한 현안들이 산재해 있고, 따라서 러시아는 북한의 혼란을 바라지 않을 것”면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남·북·러 가스관 문제도 김정일 사망으로 굉장히 불투명해졌다는 점에서 더욱 접촉면을 넓히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종만 한국-시베리아센터 소장은 “김정은이 나이가 어리고 장성택이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군부 쪽 안정이나 조직력 강화를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러시아도 하나의 인접국이기 때문에 북한의 안정을 바라며 중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하겠지만 밀착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제성훈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HK 연구교수는 “러시아는 중국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미국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보면서 일단은 관망할 것”이라면서 “북한 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가 없다는 측면에서 러시아는 욕심을 부리지 못하며, 다만 추이를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