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고된 노동과 준비의 시간(1911~1918) 나라가 망하자 연해주 분위기가 일변했다. 홍범도 같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러시아 당국의 감시받는 존재가 되었다. 러시아로서는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이 일본을 자극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1911년 홍범도를 비롯한 이상설 등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정치적인 목적을 빼고, 생업을 장려한다는 ‘권업회’를 조직하게 된 것도 러시아 당국의 압박 때문에 취한 고육책이었다. 홍범도도 ‘권업’에 나섰다. 1912년 가을, 동지들과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충남 천안시가 13일 오후 시청 재난상황실에서 경찰서, 소방서,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관계기관 실무위원과 행사부서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안전관리 실무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는 오는 28일에 개최되는 3.1운동 104주년 기념 아우내봉화제를 앞두고 관계기관과의 대응체계 구축으로 철저한 행사장 안전사고 예방과 대응을 위해 마련했다. 행사장 안전관리계획, 인명피해 발생 시 신속한 대응과 교통대책, 화재·인파사고 상황 발생 시 대응체계 등 안전관리계획 전반에 대한 점검과 심의를 진행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홍범도는 1868년 음력 8월 27일 평양 보통문(서문) 안 문열사 앞마당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홍윤식(洪允植)은 머슴, 어머니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여 홍범도는 홀아버지 밑에서 동네 젖을 먹고 자라야 했다. 그가 태어나기 2년 전 평양에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따라 평양까지 와서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다가 평양감사 박규수를 비롯한 관민의 분노를 사서 불 공격을 받고 침몰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홍범도의 생애가 나라의
[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인천시교육청이 우리나라 최초 공립보통학교인 창영초등학교 이전과 관련해 다양한 소통의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30일 밝혔다. 최근 인천시교육청은 과밀학급 해소와 금송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창영초를 개발지역으로 옮기는 안을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에 의뢰했다. 앞서 시교육청은 그동안 창영초 이전재배치 필요성을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주민설명회, 컨설팅, 학교관계자들과 다양한 소통과정을 진행해 왔다. 시교육청은 중앙투자심사에서 금송 재개발 사업 등으로 유발된 교육수요를 수용하기 위해 추진했던 사회적합의 과정과 신설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해방과 해외동포 1945년 8월 15일 낮 12시 일본 히로히토 천왕의 항복 성명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을 때 해외에는 약 500만 이상의 한국민이 있었다. 이들은 일본에 220만, 만주를 포함한 중국 전역에 250만, 기타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지역에 일제의 강제동원이나 취업 또는 사업을 위하여 해외에 나갔던 사람들이었다. 일제의 패망으로 조국으로 돌아가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부풀었으나 그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더구나 중국은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에 휩싸였고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해녀들의 항일운동 3.1운동 후 일제는 무단통치를 철회하고 조금 완화된 문화정치로 후퇴했다 하더라도 사찰과 통제가 완화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경찰력을 증강하여 더욱 주밀하게 감시하고 통제했다. 이 때문에 192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합법공간의 청년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대부분의 운동이 거의 존립기반을 상실했다. 이에 적색농민조합운동, 적색노동조합운동 등으로 사회주의적 조직화와 지하화를 통해 농민운동, 노동운동을 혁명화하고자 하였으나 큰 변화를 가져오지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공산당 재건운동과 고경흠, 강문석 제4차 공산당 사건으로 괴멸적 타격을 받은 조선공산당은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의 국제적 승인이 취소되어 해방될 때까지 당 재건 운동이 전개되었다. 당 재건운동에서 제주도 출신의 고경흠(高景欽)이 크게 활약했다. 고경흠은 1927년 일본으로 유학 가서 동경에서 이북만(李北滿) 등과 ‘제3전선사(戰線社)’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잡지 을 발행했으며,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FF) 동경지부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929년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사회주의 운동 3.1운동은 거대한 독립운동이었다. 3.1운동으로 인하여 일제의 무단통치에 질식해 가던 독립정신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젊은이들은 만주로, 상해로 달려가 독립군과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에 합류했다. 독립운동이 새로운 활기를 띠었고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3.1운동을 기념하며 결의를 재다짐했다. 3.1운동은 일제로 하여금 무단통치를 문화정치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그 제한된 자유의 틈새에서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민족 언론이 출범했고 국어·국사 등의 국학운동과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3.1운동에 앞선 법정사 항일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인사동 태화관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과 함께 독립만세시위운동이 시작되어 서울 전역과 전국에 퍼져나갔다. 민족 최고 최대의 3.1독립운동의 시작이었다. 그 5개월 12일 전에 제주도에서 법정사 항일투쟁이 일어났다. (*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가 있다. 김광식, 「법정사 항일운동의 불교사적 의의」, 『한국민족운동사연구』 5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9 김광식, 「법정사 항일운동의 근대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바람이 먼저 부는 곳 지난 30년 동안 매년 평균 25.6개의 태풍이 발생했는데, 그중에서 평균 3.1개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2019년에는 20개의 태풍이 발생했는데, 그중에서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 것이 7개나 되었다. (기상청, 태풍발생현황통계, 1981-2010 및 2019) 태풍이 불어올 때마다 뉴스에 제일 먼저 제주도가 이야기된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태풍을 맞는다. 역사의 태풍도 비슷한 것 같다. 제주도는 목포에서 약 100㎞나 떨어
[천지일보=류지민 기자] 박환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지난해 12월 31일 자로 외교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박환 교수는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의 대표적 학자로 잊혀진 러시아지역 한인 독립 운동사를 개척적으로 연구하는 한편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 등 주요 현충시설물 설치 자문 등 외교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 해당 수상은 한국사 전공 역사학자로서 첫 수상인 점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수상식은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전쟁과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표창장만 전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박 교수는 연구서 간행을 통해 잊혀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제주도는 삼다도(三多島). 돌, 바람, 여자가 많다. 돌과 바람이 많아서 척박한 땅이다. 오죽 땅이 척박했으면, 여성들이 바다에서 물질하며 삶을 개척해야 했을까. 제주의 독립운동사도 돌, 바람, 여자의 키워드로 풀어볼 수 있다. 필자는 불과 14년쯤 전에 처음 제주도에 갔는데, 그때 조천의 제주돌문화공원에 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육지에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다양한 생활용구, 건축부재들에 돌을 사용하여 온 것을 볼 수 있었다. 돌문화공원을 보고 내린 결론은 이것이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만해 한용운 한용운은 불교 승려이고, 불교개혁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다. 그의 본관은 청주, 본명은 정옥(貞玉)이고 어릴 때 이름(아명)은 유천(裕天)이었다. 만해와 용운은 불교 이름인데 용운(龍雲)은 불교에 귀의한 제자들이 받는 불교 이름이며, 만해(卍海)는 승려의 아호이다. 그는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홍성군 관아의 하급 임시 관리였던 한응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5세 때부터 동리 서당에서 공부했는데 고향 홍성은 조선 후
[천지일보 장성=이미애 기자] 장성군이 2일 오전 충혼탑 참배로 2023년의 문을 열었다. 김한종 장성군수와 고재진 장성군의회 의장, 도‧군의원, 공무원, 기관장, 사회단체장 등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충혼탑과 3.1운동열사의적비, 기삼연대장순국비에 분향, 묵념을 이어갔다. #장성군 #충혼탑 #참배 #2023년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거인에 대한 기억 1940년 3월 13일 이동녕 선생이 중국 땅 기강에서 71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초대 의장(1919.4.10~4.25)으로서 임시정부 출범의 산파역할을 했고, 그 후에도 제12대, 제15대 임시의정원 의장, 임시정부의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령과 주석 등 수반을 여러 차례 지냈다. 그와 오래 고락을 함께한 동지인 조완구는 그의 장례 후에 쓴 글(, 1940년 4월)에서 그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선생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중일전쟁의 전세는 점점 중국에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한커우와 광저우가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 김원봉은 1938년 10월 10일 중국의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에서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는데 일제의 세력이 남하해 옴에 따라 궤이린(桂林)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수세에 몰린 중국 국민당은 중국 내 한인 독립운동 세력을 중국의 항일전에 동원하고자 나섰다. 1938년 11월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위원장이 김구를, 1939년 1월 6일에는 궤이린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의용대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김원봉(金元鳳, 1898. 9. 28~1958)은 뜨거운 남자였다. 뜨거운 열정, 뜨거운 투쟁, 뜨거운 사상이 일생을 지배했다. 그를 전설적인 독립투사로 각인시키는 것은 그가 창설한 의열단 때문일 것이다. 의열단은 3·1운동과 같은 평화적 시위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암살, 폭파 등의 격렬한 항일투쟁을 위해 창설한 단체이다. 그 후 조선의용대를 창설한 것이나, 사회주의로 기울어졌던 것도 더욱 뜨거운 투쟁의 방편으로 선택한 길이었을 것이며, 해방 후 북한행 또한 더욱 뜨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이란 말은 1942년 1월 1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가한 ‘국제연합에 의한 선언’에서 처음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주축국(독일, 이태리, 일본)에 대항하여 26개 나라가 함께 계속 투쟁할 것을 촉구한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국제연합 창설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어 약 4년 후인 1945년 10월 24일 공식 창립되었다. 국제기구들의 탄생 국가 간 특정문제 협력을 위한 국제기구는 1865년 파리에서 창립된 국제전기통신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조명받지 못한 국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공정과 상식)은 20일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공정과 상식의 대한민국, 올바른 근현대사의 정립’을 주제로 50차 포럼을 열었다. 국제 형사재판소 소장을 역임했던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국내에서 지조를 지키면서 희생한 분들의 공적은 과소평가되거나 무시되고 말았다”며 재평가 필요성을 역설했다. 송 명예교수는 “해외에서 활동한 항일 업적은 애초부터 국내 중심 세력의 뒷받침 없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