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문전박대(門前薄待)’는 문 앞에서 모질게 대한다는 뜻이다. 찾아온 사람을 집안으로 들이지 않고 냉정하게 쫓아버린다는 의미로 쓰여 진다. 굶주린 자식들의 허기를 달래주려고 쌀을 얻으러 간 흥부. 몰인정한 형 놀부내외의 문전박대에 흥부는 그만 서럽게 우는데, 판소리는 처연하기만 하다.‘(전략)… 아이고 기가 막혀, 흥부가 기가 막혀, 부모께 나실 적 우렁찬 울음의 형제애, 이제는 욕심에 눈이 멀어 호형호제 어디에, 굶주림보다 서러… (하략)….’판소리 춘향가에서도 문전박대 얘기가 나온다. 춘향이 옥중에서 하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미증유의 국난을 치른 조선 14대 임금 선조는 자식 복이 많았다. 왕비 2명과 후궁 6명 사이에 모두 25명(왕자 14명, 공주 1명, 옹주 10명)의 자녀를 두었다. 세종의 22명 보다 3명이나 더 많았다. 그런데 임금의 옹주 사랑은 특별했다고 한다.선조는 글씨를 잘 써 중국 사신까지도 이를 얻어가려고 했다. 선조는 궁체로 쓴 간찰을 딸들에게 수시로 보냈다. 선조 임금의 한글편지는 모두 옹주들에게 보낸 것으로 자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겨있다고 한다.시집을 가면 함께 살지 못했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초겨울 입동 때면 생각나는 한시(漢詩)가 있다. 조선 선조 때 부안 명기 매창(梅窓)의 늦은 가을 시다. 서자출신 방랑시인 유희경을 사모한 매창은 절개를 지키고 오직 한 남자만을 그리워했다.풍류로 농을 즐겼던 천재 시인 허균의 프러포즈마저 외면한 의기 매창. 서울에 있던 유희경은 늦은 가을날 연인을 못 잊어 시를 써 보낸다. 그대의 집은 낭주(浪州. 부안의 별호)에 있고 내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볼 수 없으니/ 오동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에도 애가 끊어지누나.매창도 답시를 보낸다. 그것이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폭군 연산군에게 붙어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른 유자광이 젊은 시절에는 청렴관을 지녔던 인물이다. 예종이 즉위하자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간언한 기록이 실록에 전한다.“지금의 사대부들이 염치의 도리를 잃고 뇌물을 공공연하게 행하여 소와 말, 금백 토지와 노비를 서로 증여하면서 이르기를, ‘해 저문 밤이니 아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이는 이른바 ‘그 욕심이 끝이 없는 것’과 같으며,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근래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반역하는 신하가 잇달아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이 풍속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관청과 조폭들의 커넥션 택지개발 부패상을 그린 한국영화 ‘아수라’가 요즈음 와서 부활했다. 성남시 대장동 사건을 빗댄 영화라서 관심이 증폭되는 것 같다.배우 황정민이 연기한 가공의 안남시 시장역은 이익을 위해서는 온갖 수단도 불사하는 앞과 뒤가 다른 인물로 그려진다. ‘부패한 권력과 삐뚤어진 정의는 그저 지옥이다’라고 이 영화는 답했다.‘아수라’란 불가에서 저승 혹은 지옥을 지칭하는 말이다. 본래 종족의 이름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혼란의 세계라는 뜻이었다. 극도의 혼란상을 ‘아수라장’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천하를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는 첩자를 부리는 용간술(用間術)에 능했다고 한다. 주변국과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적국에 첩자를 잠입시켜 수만금의 황금을 써서 관리들을 매수했다고 한다.삼국지의 조조는 용간술의 달인이었다. ‘전쟁을 치르게 될 때는 반드시 먼저 첩자를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적의 실정과 속셈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戰必先用間, 以知敵情實也)’는 지론을 폈다. 그러나 천하의 조조도 적벽대전에서 유비의 군대에게 참혹하게 패전해 지금도 간웅(奸雄)이란 낙인의 틀을 벗지 못하고 있다.손자병법에는 ‘간(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대한 열풍이 대단하다. 세계 80여개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이 드라마는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다. 세계 언론들의 호평도 대단하다.이 드라마는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의 얘기다. 실직 이후 경마에 빠져 사채까지 끌어다 쓴 주인공 ‘기훈’, 거액의 빚을 지게 된 ‘상우’, 새터민 ‘새벽’, 외국인노동자 ‘알리’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생존경쟁에서 낙오된 군중들이 벌이는 아수라 같은 삶의 축도라고 해야 옳다. 절박한 군중들의 인간적 한계를 뛰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추사 김정희 선생이 유명을 달리하기 사흘 전 서울 봉은사에 현판 하나를 써줬다. 바로 그 유명한 ‘판전(板殿)’이라는 글씨다. 왜 추사는 비로자나불상을 안치한 법당을 판전이라고 한 것일까.법당은 나무로 짓는 것이 상례다. ‘넓은 나무집’이라는 뜻인데 굳이 어린아이 글씨 같은 필체로 이 두 글자를 세상에 선문답하듯이 남기고 간 것일까.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곧 부처’라는 가르침을 화두로 내놓은 것은 아닐까.판교(板橋)는 우리말로 ‘널다리’란 뜻이다. ‘가는 다리’인 세교(細橋)와 반대되는 표현이다. 넓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지난 70년대 후반 청주 서문시장 안에 해장국집을 하는 구두쇠 할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별명이 욕쟁이였다. 해장국집에 드나드는 고객에 대해 존댓말을 쓰는 법이 없고 해장국을 남기기라도 하면 입에서 욕과 함께 불호령이 떨어진다. “다 XXX, 복 나가게 남기면 디어?!.”어느 날은 충북 도지사가 새벽에 장관을 안내해 해장국집을 찾았다. 장관이 해장국을 먹다가 반쯤 남기자 거침없이 욕이 나온다. 장관이 놀란 표정을 짓자 지사가 ‘장관님이십니다’라고 귀띔했다. 그런데 할머니의 응수가 걸작이다. “장관이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사람을 희생시켜 제물로 바치는 것을 인신공희(人身供犧)라고 한다. 경주 봉덕사 성덕대왕신종에는 어린아이를 시주해 용광로에 넣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둔중하게 들리는 종소리를 ‘에밀레~ 에밀레~’라고 생각한 것은 측은지심에서 붙여진 것인가. 이번 경주 월성(月城) 기반에서 발굴된 키 작은 소녀의 인골을 보면 이런 인신공희 역사가 사실로 받아들여진다.궁성 지신(地神)에게 바쳐진 소녀는 포로였을까, 아니면 귀족의 자녀였을까. 소녀는 목걸이와 팔찌를 차고 있었다니 천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산채로 매장되는 순간 소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춘향가의 본고장 남원시에서는 매년 축제 때 ‘신관사또 부임행차’가 열린다. 탐관 변학도가 부임하면서 백성들에게 위엄을 과시하는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선두에는 대취타가 앞장서 행진곡을 울리며 각종 깃발이 나부낀다. 근엄한 부사는 전립차림으로 커다란 가마에 올라 앉아있다. 육방 아전과 권속, 꽃다운 관기들이 줄지어 따라간다. 고전 춘향전에 나오는 부임행차를 보자.“…(전략) 오리정 당도허니 육방 관속이 다 나왔다.… 오십 명 통인들은 별련 앞의 배행 허고 / 육십 명 군로 사령 두 줄로 늘어서 떼 기러기 소리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죽음과 공포의 도시가 된 카블. 전쟁으로 패망한 나라가 겪는 참담한 비극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 겉으로는 통합을 외치면서 도심을 장악한 탈레반 군사들의 만행에 세계가 전율하고 있다.비겁한 대통령은 국외로 탈출했다. 미국 등 우방국에 동조한 시민들의 액소더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 편의 영화처럼 카블을 탈출하고 있는 사연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탈레반이 복장 규제 과정에서 몽둥이질을 퍼붓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인권단체인 국제 앰네스티는 최근 조사를 통해 탈레반이 지난달 초 가즈니주에서 하자라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고양시 고봉산은 해발 200m 높이로 시민들의 공원이자 둘레길이다. 한강을 낀 넓은 평야에서 우뚝 섰다고 하여 고봉산으로 불렸다. 고봉산 정상에는 고성이 남아 있어 고봉산성이라고 부른다.고봉산성은 본래 백제에서 쌓은 테메식 산성이지만 이 지역이 고구려 영토가 되어서는 매우 중요한 성으로 기능을 했던 것 같다. 이 산성에는 매우 재미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바로 고구려 제 22대 안장왕(재위 519∼531)과 백제 한주(韓珠)미녀와의 사랑이다.이 이야기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과 해상잡록(海上雜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잘 익은 술독에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떠내고 그 다음 거르는 술이 막걸리다. 가양주(家釀酒)로 불린 것은 농가에서 직접 양조했기 때문이다.막걸리는 한 식량으로 새참에 땀에 젖은 일꾼들의 목을 축여주는 단비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시인 화인(花人) 김수돈이 ‘신비의 선약’이라고 한 술이 막걸리가 아닌가 싶다.조선 후기 철종은 강화시절 막걸리가 생각나 강화유수에게 진상토록 했다. 그러나 운반 도중 상하거나 맛이 변해 아예 궁중 사온서(司醞署)에서 빚었다고 한다. 위로는 나라의 지존인 임금으로부터 백성들에 이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가 케네디 대통령 미망인 재클린과 재혼 했을 당시 나이 차이는 23년이었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미국 퍼스트레이디가 아버지뻘 되는 영감한테 시집가다니….’ 한국인들은 혀를 찼다. 그런데 이미 서양에서는 이 정도 나이 차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결혼 풍속이었다.피카소의 명작 ‘마리 테레즈 발테르의 초상’은 사랑하는 연인을 그린 그림이다. 1927년 당시 17세의 나이에 44세이던 피카소를 만나 모델이자 연인이 됐다. 그녀는 1935년에는 마야(Maya)라는 이름을 가진 딸을 출산했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백제는 고대 삼국 가운데 어떤 나라였을까. 삼국사기를 엮은 김부식의 사론을 보면 결국은 망하게끔 돼 있는 나라라고 정의한다.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의 안이한 안보관에다 황음이 패망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백제본기 의자왕조의 마지막 기사는 거짓 역사, 즉 위사(僞史)라는 지적이 많다. 의자왕은 해동증자라고 불릴 만큼 인자하고 효성이 극진한 인물이었다. 신라통일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망한 역사로 꾸민 것이다.5세기 말엽 고구려 장수왕이 침공해 한성 백제를 멸망시키기 전 백제는 가장 강성했다. 한강 위례성에 왕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40년간을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아 MC계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송해 옹. 90을 훨씬 넘긴 나이에 아직도 열정적인 모습으로 무대에 서며 거침없는 입담과 우스개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한다.송해 옹은 스스로 자신을 ‘딴따라’고 했다. 연예인을 가리키는 비칭이지만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송 옹은 트롯 ‘딴따라’를 즐겨 부른다.어디에서 임자 없는 내 노래를 불러 보나/ 가진 건 없어도 행복한 인생/ 나는 나는 나는딴따라/ 만남이 좋다/ 친구가 좋다/ 정처 없이 걸어온 유랑의 길/ 인정 속에 세월이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권력은 또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모두 국민들을 위하고 국민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권력 창출을 목전에 둔 정치권은 창피한 줄도 모른다. 일부 특정언론은 이에 편승해 금도마저 잃고 있다.조선시대 끔찍한 여러 사화의 성격을 보자. 따지고 보면 비극적 권력 투쟁의 산물이었다. 경종대 신임사화의 경우 차기 왕권을 싼 노, 소 양당 충돌의 피비린내 나는 유혈사로 기록 된다.상대를 모함하는 수단은 상소문이 주축을 이뤘다. 요즈음의 언론 역할을 했다고 해서 언로(言路)라는 이름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백관의 잘못을 감시하고 규찰했던 조선시대 사헌부. 우두머리는 종2품의 대사헌이었다. 그런데 대사헌의 관복 흉배는 문관들이 차는 것과는 달리 ‘해치’를 새겼다. ‘해치’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사헌부 관리들은 해치관(冠)을 썼다고 한다. 법을 다루는 관부, 공정을 지켜주는 상징을 해치로 삼은 것이다.사헌부 관리들이 궁궐을 드나들 때는 해치상(像) 꼬리 부분에 손을 얹는 관습이 있었다. 공명정대한 판단을 다짐하는 의식이었다는 것이다.조선시대 명 대사헌으로 회자되는 인물은 누구일까. 필자는 명재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세종이 세자시절부터 책을 좋아한 일화는 많이 알려져 있다. 잠을 자지 않고 철야로 책을 읽어 동궁을 지나던 태종이 건강을 걱정했다.지독한 독서열로 40대에 시력이 약화돼 고생을 많이 했다. 세종의 지독한 학구열은 잠자던 조선의 문화를 일깨우는 기적을 창출한다.세종의 총애를 받은 집현전 학사들도 늦은 밤까지 책을 읽었다. 임금이 밤을 새워 공부를 하니 젊은 신하들도 면학 풍모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겨울 어느 해 깊은 밤에 세종이 집현전 부근을 거닐다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내관에게 알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