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누가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빼어난 상상력이다. 3개월여만에 미국 텍사스주 콜로니얼 컨트리클럽에서 재개되는 미국프로골프 투어 찰스 슈와브 챌린지 대회에서 참가 선수들이 대회 첫날 오전 11일 오전 8시 46분(현지시간, 한국시간 11일 밤 10시 46분)에 모든 샷을 멈추고 백인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세상을 떠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1분간 묵념으로 추모하기로 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묵념시간을 오전 8시 46분으로 결정한 이유는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을 눌린 8분 46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6세기 중반 백제 왕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긴 성왕. 일본 긴메이(欽明) 천왕에게 불교를 전래하면서 특별히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관음에 대해 당부한 말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조서를 보내 보주관음에 대해 잊지 말라고 당부했으니 이것이 일본에 전래된 첫 불교 유물이 아니었을까. 성왕은 왜 ‘보주관음’을 강조했던 것일까.-(전략)…이 법은 무상의 보리(菩提)에 도달 할 수 있다. 비유하여 말하면 사람들이 여의주를 품고 필요에 따라 모두 먹은 마음대로 되는 것과 같이 이 묘법의 보물도 그렇다. 또 멀리 천축에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진한시대에서 청대까지 중국의 대규모 농민기의와 평민폭동은 의협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조직을 주도했다. 통치계급에서 이탈한 지도자들은 협의정신, 기량, 자유 등을 내세워 살인으로 살인을 막고, 폭력으로 폭력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자유와 평등을 추구했다. 그들의 신념과 행위는 묵가의 평등사상과 거의 일치했다. 송강(宋江)의 양산(梁山)기의는 ‘체천행도(替天行道)’, 송종상(宋鍾相)의 양마(楊麽)기의는 ‘등귀천(等貴賤), 균빈부(均貧富)’, 원말의 홍건군은 ‘불평등이 사라지면 태평세상이 온다,’ 명말 이자성(李自成)은
종교 하면 신과 연결을 시켜줄 수 있는 가교(架橋)의 역할이며, 그 종교 중에는 유불선 즉 유교, 불교, 기독교 이 세 가지를 대표적으로 떠오르게 된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의 기준을 생각하게 되며, 유교를 믿는 사람은 공자가 전한 말 같이 부모님께 효를 잘하고 나라에 대해 충신 적이며, 불교일 경우 부처님같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용서하고 품어주며, 기독교의 경우 예수님같이 낮은 자의 자세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개념과 일흔 번에 아홉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개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불교의 주 예배 존자인 미륵(彌勒)은 ‘자비로운 분’이라는 뜻이다. 자비(慈悲)란 ‘중생에게 행복을 베풀며 고뇌를 제거해 주는 것을 가리킨다. 불자들은 미륵이 한량없는 자비를 지니고 있으며 민중의 소망을 들어준다고 믿어 왔다.미륵신앙은 상·하생신앙으로 나눠지며 미래에 나타날 미륵은 하생경에서 설명이 된다. 그러면 미륵은 언제 나타난다고 한 것일까. 미륵불은 석가모니불 열반 후 56억 7000만년이 지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고, 3차례의 설법으로 중생들을 구제한다고 했다.한반도에 불교가 도입된 시기는 삼국
세상은 참으로 하 수상(殊常: 몹시 괴이하고 뒤숭숭함)하다. 추측은 무성하지만 알 수 없는 질병이 팬데믹(세계적 유행)화 되며 인간의 편리성을 위해 만들어 놓은 모든 이기적 문명을 정지시키고 지구촌의 모든 질서를 한순간에 멈춰 세워놓고 있다.“태산이 높다 한들 하늘 아래 뫼”라는 시조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순간이다. 인생을 자랑하지 말라는 글귀도 스쳐지나간다. 인간의 생명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가는 현장을 하늘은 우리에게 생생하게 목도하게 하며, 우리는 언젠가부터 생명의 존엄성마저 상실해지고 또 무너져 가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허무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중국은 그들의 전통문화를 설명할 때 유가, 불교, 도가 등 3가지 종교를 종지로 삼는다. 묵가에 대해서는 소홀하다. 우리는 더욱 심하다. 야스퍼스는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기축시대(Axial Age)’라는 말을 사용했다. BC10세기를 상한선으로 인류문명에 ‘창조적 소수’가 등장해 삶을 위한 종교적인 ‘초월적 돌파’를 이루었다는 주장이다. 그리스, 인도, 중국 등 고대 문명의 중심지역과 치열한 전쟁이 발발했던 중동에서 위대한 선각자들이 나타났다. 무력, 민족주의, 계급질서와 같은 기존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인간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거란의 요는 흥종(興宗)과 도종(道宗) 시대에 이르러 국력이 약화돼 서하의 도전을 극복하지 못했다. 서하의 조상은 선비족의 갈래인 당항인(黨項人) 척발적사(拓跋赤辭)로 황하 상류에 살다가 정관(貞觀) 초기에 당에 귀화해 이씨성을 하사받고 조공국이 됐다. 그의 후예가 섬서성(陝西省) 횡산현(橫山縣)의 서쪽 하주(夏州)에 거주하면서 평하부(平夏部)라는 호칭을 얻었다. 당말 황소(黃巢)의 난에서 척발사공(拓跋思恭)이 공을 세워 정난(定難)절도사로 임명됐다. 관할 구역은 지금의 섬서성 북부 연수(延水)의 이북에서 수원
대재앙으로 엄습해 인류의 모든 생각과 일상과 기능을 마비시키며 멈춰 세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매우 궁금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 ‘코로나(Corona)’라는 이름은 인류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함께해온 친숙한 단어다.예부터 국내는 물론 세계 유명브랜드에는 어김없이 ‘코로나’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유명 호텔·백화점·자동차·맥주 등이 그 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 자동차 회사인 ‘새나라 자동차’ 이후, 오늘날 한국 GM의 전신인 ‘신진자동차’가 탄생해 1960년대 ‘코로나’라는 자동차를 출시해 국내 자동차 대
대한민국에서 ‘신천지는 주홍글씨’다. 그런 주홍글씨가 새겨진 신천지를 택하는 건 2000년 전 초기 그리스도인 같은 각오가 필요해 보인다.2000년 전 로마에 급증한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혐오스런 자들’ ‘소란을 피우는 자들’ ‘괴상한 말로 사람을 미혹하는 자들’로 치부됐던 것처럼 지금 한국사회 기득권이 바라보는 신천지가 딱 그렇다.이런 환경에서 천지일보가 신천지에 대한 사실을 말하니, 개신교인들과 개신교인들의 후원금으로 먹고사는 개신교 대변지 눈에 천지일보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그간 개신교 대변지들은 선거철마다 신천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사회불안이 커지고 있다. 보건당국이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국민들이 직장생활 등 일상생활에서 개인위생에 주의하면서도 감염될까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와중에 일부 언론이 감염병 확산을 막고 객관적·정확한 정보를 통해 국민 심리 안정에 기여해야할 테지만 특정 종교인들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을 이용해 마녀사냥식 편파적인 보도를 하고 있어 사회 불안과 더불어 국민 불만이 크다.심지어 ‘종교를 널리 선전한다’는 의미의 선교와 포교의 용어마저 곡해시키면서 재미 위주로 보도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불안한 세상에 사는 인간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이 그립다. 생명의 양육이 인간의 존재 이유라면, 의식은 인간을 만물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존재로 살아가게 한다. 생명은 정(精)을 만든다. 인간이 아니라도 정을 지닌 존재가 ‘요정(妖精)’이다. 요정은 아름다워도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으로 살아가는 인간처럼 다이나믹하지는 않다. 정은 음성과 양성으로 양분된다. 두 가지 정이 화합하면 ‘신(神)’이 탄생한다. 전통의학자에게 신은 신앙적 대상의 신이 아니다. 귀신은 생명의 존재형식에서 벗어나 우주로 ‘돌아간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여행(旅行)은 머물던 답답한 곳을 떠나 그 자리에 있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 전제는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떠나기 전과 돌아온 후에는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길을 가면서 하는 독서라는 말처럼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오래전 정릉의 컴컴한 지하에서 작업을 하던 전각가 최규일이 평생의 화두라고 하면서 갖가지 이미지를 지닌 여(旅)라는 글자를 수도 없이 새기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무수한 이미지들이 주는 기묘한 감동은 작업실이 주는 스산함과 함께 오랫동안 언젠가는
교수들은 2019년을 마감하며 ‘공명지조(共命之鳥)’와 ‘어목혼주(魚目混珠)’라는 사자성어로 한 해를 뒤돌아봤다. 공명지조는 불교 경전의 아미타경에 나오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 즉, 머리는 둘이지만 목숨을 함께하는 공동의 운명을 가진 새를 가리킨다. 머리 하나는 낮에 일어나고, 머리 하나는 밤에 일어나는 성질을 가진 상상속의 새다. 낮에 일어나는 머리는 몸을 위해 좋은 열매를 챙겨 먹는데 반해 다른 머리는 반대로 이기심과 질투심으로 인해 독이 있는 열매를 먹게 되니, 결국 한 몸이기에 그 독으로 인해 두 머리를 가진 상
세상은 왜 이렇게 분탕질 치며 살아가야 할까.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 같은 의문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는 삶이란 그저 습관처럼 살아 왔으며, 왜 살아야 하는 건지 향방이 없고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문을 던져보자. 과연 세상은 이런 것이며, 이렇게 살다 죽는 게 인생이며 인생이 목적한 바인가. 분탕질 속에 사는 우리에게 분탕질 대신 고요와 평화는 요원한 것인가. 아니다. 원래 세상은 고요와 평화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어떤 사연으로 인해 분탕질 치며 살아가야 하니 우리 자신들 생각의 결과며 그야말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해마다 음력 8월 18일 무렵에 항주의 전당강에는 전강조(錢江潮)가 일어난다. 전강조를 구경하기에는 육화탑이 가장 좋다. 전강조는 바닷물과 전당강이 거세게 부딪쳐 엄청난 파도가 몰려오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이 특이한 자연현상에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 풍성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소원을 빈다. 사람들은 전당강에 사는 용이 제물을 바치라는 강요라 생각하고 오래도록 여러 가지 행사를 열었다. 자연의 메카니즘에 대한 두려움은 종교 의식과 영웅을 낳았다. 종교적 바람이 육화탑이라면 영웅은 육화탑 뒤에서 활로 용을 쏘는 오대의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한산사(寒山寺)는 옛 소주성에서 서쪽으로 십리 정도 떨어진 풍교(楓橋) 곁에 있는 사찰이다. 언덕 하나 보이지 않는 대평원이라 절은 산속에 있다는 우리 인식과 달리 수많은 물길들 사이에 다른 건축물과 같이 얌전히 앉아 있다. 불교가 한창 극성을 부리던 양(梁)의 천감(天監) 연간에 세워졌으며, 당(唐)의 시승 한산자(寒山子)와 습득(拾得)이 거처하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대웅전 뒤의 한습전(寒拾殿)에는 망울진 연꽃 한 송이를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는 한산자와 묵묵히 귀담아 듣는 습득의 상이 있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지 850일 넘었다. 브라질에서 철광석을 싣고 중국으로 향해 가다가 남대서양에서 침몰했다. 한국인 8명을 포함해 24명이 타고 있었다. 2명은 구조되었지만 22명은 실종된 상태다. 가족들은 오늘도 켜켜이 쌓인 한과 억울함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고통을 느낄 힘도 안남아 있다고 말하는 게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바라는 건 오직 하나다. 진실 규명과 실종자 구조, 유해 수습이다.긴긴 시간 동안 실종자 가족들은 진실규명의 길에 직접 나섰다. 거리 서명 작업을 직접
지구촌(村), 이 말은 온 세계가 마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마을과 같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격조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현실은 지구촌이라는 품위 있는 단어를 쓰기엔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갈라질 대로 갈라진 세상을 함께 노력해서 그야말로 지구촌을 만들라는 지상 명령을 받은 것이며, 이는 우리의 지상 과제다. 온 세계가 진정 지구촌이라 부를 수 있을 때 비로소 지구촌은 평화가 찾아온 지상 낙원이 되며, 이에 대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성인들과 선각자들이 미리 말해 왔으니 바로 무릉도원이며 신세계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오대시기 후주 세종 시영(柴榮 921~959)은 하북 형대의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집안이 중도에 몰락해 곽위(郭威)에게 시집간 고모를 찾아갔다. 시영은 곽위를 도와 각종 사무를 잘 처리하여 사랑을 받다가 양자가 되었다. 당시 곽위의 집안은 부유하지 않았다. 시영은 살림을 돕기 위해 차를 팔면서 강릉까지 오가면서 기사와 무예를 익히며 역사와 황로학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다. 후한에서 추밀부사가 된 곽위를 따라 종군하여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 곽위가 후주를 세우자 황자의 신분으로 개봉을 지켰다. 954년, 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