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중국 산동성 제남시 대명호 동북쪽 기슭에 수면에서 높이 약 7미터인 언덕에 제남의 유일한 도교사원 북극각(北極閣)이 있다. 1280년에 처음 지은 이래 74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했으며, 지금 보는 것은 1981년에 중수한 것이다. 이 사원의 특징은 정전에 안치한 진무(眞武)와 거북, 뱀 등 두 장수의 조각상이다. 중앙의 불감(佛龕)에 진무의 좌상이 있고, 양쪽에 금동(金童)과 옥녀(玉女)가 시립하고 있다. 전하방에는 화장(火將), 수장(水將), 구장(龜將), 사장(蛇將)이 있으며,
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감독당국이 가상화폐 입법을 공식화했다. 가상화폐가 제도권에 공식 편입되고 자산으로서 권한과 책임이 한층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를 양지로 끌어내어 투자자는 보호하되 불법엔 철퇴를 가하기로 한 것이다.미국·유럽 등 주요국들도 가상화폐에 대한 제도와 규칙 마련에 이미 착수했다. 유럽연합(EU)은 27개국 유로존에 공통 적용될 디지털 자산 거래·발행에 관련된 포괄적 규제를 2024년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가상화폐를 기타 적격 금융 상품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가상화폐 발행인이 유럽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고침단명(高枕短命)’이란 베개를 높이 베면 목숨이 짧다는 뜻이다. 베개를 높이 베면 건강에는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젊은 나이에 벼슬이 높아지면 화가 미친다는 뜻으로 사용된 사자성어다.송나라 정이천(1033~1107년)은 사리 판단을 잘하는 학자였다. 그는 젊은이가 일찍 출세하는 것을 세 가지 불행 중 으뜸으로 꼽았다.‘인간에게는 삼불행이 있다. 첫째 어린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 둘째 부형의 군세에 힘입어 좋은 벼슬을 하는 것, 셋째는 뛰어난 재주로 문장에만 능숙한 것이다(伊川先生言, 人有三不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라는 한문소설은 한 총각과 시집가지 못한 채 죽은 처녀의 한을 그린 작품이다. ‘저포’란 나무로 만든 주사위를 던져서 그 사위로 승부를 다투는 놀이다. 조선 세조의 왕위 찬탈에 저항한 생육신 김시습(金時習)이 지었다.만복사는 지금의 남원시에 있던 절이며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절터에 남은 여러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매우 번창했던 것 같다. 신라 다섯 소경(小京)의 하나인 남원소경 시기 경찰(京刹)이 아니었나 싶다.주인공 양생은 남원 양반가의 총각으로 만복사에서 공부할 때 비
조선(朝鮮, 해 돋는 아침의 나라), 약 629년 전 이씨조선(1392년 7월 17일)이 개국을 맞는다. 고려(高麗)는 오랫동안 부패가 쌓여 적폐가 되어 종말을 맞는다. 그 부패와 적폐는 낡은 사상이 가져왔으며, 낡은 사상은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불교)의 결과니 곧 부패한 종교가 스스로 종말을 가져온 것이다.그리고 이성계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왕조를 세웠으니 이를 일컬어 흔히 역성혁명(易姓革命, 왕조가 바뀌는 일)이라 한다.개혁의 명분은 부패와 적폐를 척결하는 것이었고, 불교 대신 유교를 국교로 하는 숭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인간에게서 어떤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것일까. 구약성경에서는 ‘에서와 야곱의 화해’를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창세기 33:10)’라고 기록된다.솔로몬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언 17:22)’고 기록했다. 서로 싸우는 사이라면 쳐다보는 얼굴도 아름답지 못하다. 눈에서 저주와 질투, 악행이 번뜩이게 된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근심 걱정이 생기고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아비방연’이란 창극을 봤다. 세조가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를 때 호송을 책임진 의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을 소재로 한 것이다. 극의 줄거리는 아비 왕방연이 사랑하는 딸 소사를 지키기 위해 한명회 편에 서서 어쩔 수 없이 악역을 맡게 된다는 얘기다.단종을 지킨 충신 김종서를 축출한 계유정난에서 단종에게 사약을 내릴 때까지의 궁중 암투와 권모술수를 시종 슬픈 우리 소리로 암울하게 펼쳐나간다.수양대군은 원로 공신과 충신들을 살육하면서 ‘적폐를 청산해 새 나라를 세우겠다’고 권력탈취의 정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난계 박연(蘭溪 朴堧)은 세종 당시 아악(雅樂)을 정리한 분이다. 76세 되는 해 계유정난으로 아들이 사형 될 때 죽을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세조는 나이가 많고 3조에 걸친 공신이라고 감옥에 가두지 않았다.난계의 고향은 충북영동 심천이었다. 그가 낙향하면서 청주목에서 하루 묵게 된다. 해가 기울자 난계는 피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처연하게 곡조를 탔다. 아들의 죽음과 어린 단종에 대한 아픔 때문이었을까. 구슬픈 피리소리에 몰려든 관아의 관리나 기생들이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조선 유교사회에서는
수암 김동영천만리 머나만 길에 고은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더니 저 물도 내 맘 같아야 울어 밤길 애달프다.이 시조는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왕방연(王邦衍)이 세조의 명을 받고 ‘단종’을 강원도 영월 유배지 청룡포에 호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허탈한 그의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청령포를 굽어보는 서강(西江) 강변 언덕에 앉아 그의 애절한 심정을 노래한 연군(戀君)의 단장곡(斷腸曲)이다.그는 참혹한 권력의 희생양이 되신 ‘단종’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과 서러움을 절절이 표현하면서, 동시에 부도덕화한 정치권력으로부터 어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2022년부터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바뀌는 초등학교 3~4학년 과학교과서의 검증에 참여하며, 초등 4학년 교과서를 살펴보던 중 사회 교과의 보완도서로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편찬한 ‘서울의 생활’이란 교과서가 눈에 띄었다. 책을 열어보니 흥미 있는 주제들이 많아 초등 4학년생으로 돌아가 보려는 마음으로 살펴봤다. 2단원 ‘우리가 알아보는 서울의 역사’ 내용 중 2장에 담긴 ‘서울의 역사적 인물’의 내용을 예전에 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교과서적인 상식 이야기로 정리해본다.‘나라를 세우고 발전시킨 왕들’ 주제에는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본 칼럼에 소개하는 종친부(宗親府)는 조선시대 역대 모든 제왕의 어보(御寶)와 어진(御眞)을 봉안(奉安)하고 종실제군(宗室諸君)에 관한 각종 사무, 즉 봉작(封爵), 승습(承襲), 관혼상제(冠婚喪祭) 등의 업무를 의논하고 처리하던 관청이었다.고려시대에는 제군부(諸君府)라는 명칭으로 불리워졌는데, 종친부는 1430년(세종 12) 관제로서 확립됐으며, 세조(世祖) 대에 종친 중용이라는 예외적인 상황도 있었으나, 종친에게는 직무를 맡기지 않는다는 원칙은 조선왕조 대에 계속 유지됐다.이러한 원칙으로 인하여 조선시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 최고의 화원 안견이 안평대군(1418~1453)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이다. 진(晉)나라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 풍모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안평은 이 그림을 하명하면서 앞으로 닥쳐올 참변을 예견하고 도원에서 살기를 염원한 것은 아닌가. 그런데 이 그림은 아쉽게도 일본 천리대에 소장돼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걸린 그림은 모사본이다.안평대군은 조선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었다. 둘째 형 수양대군에 저항하다 36세에 죽은 불운의 왕자였다. 청지라는 자(子.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보한재 신숙주(保閑齋 申叔舟)는 세조~성종 때 학자다. 그는 임종 직전 성종에게 극간을 한다. ‘왜국과는 반드시 선린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통신사로 왜국을 돌아보고 귀국했던 보한재는 왜 이 같은 유언을 한 것일까.“그들은 습성이 굳세고 사나우며 칼과 창을 능숙하게 쓰고 배 부리기에도 익숙합니다. 우리나라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들을 진무(鎭撫)하기를 법도에 맞게 하면 예를 갖추어 조빙(朝聘)하지만, 법도에 어긋나게 하면 곧 방자하게 노략질을 합니다...(중략)...”(신죽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우리가 나라를 빼앗기고 창씨개명(創氏改名)까지 하게 된 것이 일제 강점기가 처음이 아니다. 그보다 600년 전인 고려시대 때 이미 창씨개명이 있었다. 고려가 몽골이 세운 원(元)에 굴복하여 식민지로 전락하고 충렬왕이 원의 세조 쿠빌라이의 사위가 되면서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 됐다. 이때부터 고려 왕의 묘호에 조(組)나 종(宗)을 쓰지 못하고, 왕의 시호 앞에는 충(忠)을 붙이도록 했다. 원나라에 충성하는 임금이 되라는 것이었다.고려의 임금은 스스로를 부를 때도 짐(朕) 대신 고(孤), 신하가 임금을 부를 때도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조선시대 임금을 가장 근거리에서 모셨던 기관이 승정원(承政院)이다.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과 같다. 승정원의 제일 중요 업무는 왕의 교서(敎書)나 전국에서 상달되는 문서들을 관장하는 것이다. 매일 매일 임금의 언행과 궁중의 중요한 이들을 기록했는데 그것이 승정원일기다. 승정원일기는 양이 방대하고 사료적 가치가 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이 일기를 보면 당시 임금을 중심으로 한 일들을 거울처럼 파악할 수 있다. 세조 때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 발각돼 죽음을 당한 성삼문은 승정원의 예방승지(禮房承旨)였다.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자동차 배기가스가 ‘세계 3대 환경문제’ 중 하나인 지구 온난화와 대기오염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대두되고, 유류 값이 크게 오르면서 바이오 에너지(Bio-energy)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바이오 에너지는 자연계에 존재하며 에너지로 사용 가능한 식물, 동물, 미생물 등의 생물체량을 의미하는 바이오매스(Biomass)를 연소나 발효 과정을 거쳐 생산하는 에너지를 이르는 말이다. 바이오 에너지에 속하는 바이오 연료(Bio-fuel)는 크게 휘발유에 섞어 사용하는 바이오 에탄올과 경유에 섞어 사용하는 바이오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임금 세종. 백성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훈민정음은 대표적인 업적이다. 유네스코는 한글이 세계 많은 글자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당대 많은 유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한글 창제를 밀어붙인 세종의 의지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세종은 동궁시절부터 글을 좋아했다. 한번 책을 잡으면 밤을 새는 일이 많았다. 평소 과식과 운동 부족이었을까. 세자는 몸이 비대해진다. 아버지 태종도 아들의 비만을 걱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은 젊은 시절에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고대 중국 한나라의 영웅으로 유방을 도와 천하를 제패한 한신. 그는 불우한 시절을 이기고 온각 굴욕적인 삶 속에서도 성공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정작 제2인자가 돼서는 주군으로부터 배신을 당한다. 유방은 한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후환을 없앴다. ‘사냥꾼은 사냥이 끝나면 개를 삶아먹는다’는 토사구팽이란 유명한 고사를 만들었다. 역사를 보면 킹메이커였던 2인자들의 만년이 불행했다. 조선 역사에서도 그런 사례는 여럿 찾을 수 있다. 권력을 잡으면 겸양을 잃고 정도(正道)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선 태종
정라곤 논설실장/시인정부가 주도하는 대통령 발의의 개헌안이 3차에 걸쳐 그 대강의 내용들이 국민에게 공개됐다. 헌법이 국가의 통치와 관련된 조직·작용의 기본원리를 담고,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므로 정치권뿐만 아니라 널리 일반국민들에게까지도 관심이 많다. 대통령 발의 개헌은 국무회의를 거쳐 발의하는 만큼 일부에서는 청와대가 공개한 내용 자체가 위헌이 아닌가 꼬투리를 달고 있지만 국무회의에서 소정의 절차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별 문제는 없는 것 같다.개헌안을 보면, 지금까지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국정에서 문제가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이화장(梨花莊)을 찾았다. 이화장은 1945년 광복 직후 이승만 박사가 미국에서 돌아와서 거주한 곳이다. 공사 중이라서 집 앞의 이승만 대통령 동상만 보았다. 동상 아래에 새겨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가 새삼스럽다.원래 이화장은 세조 때 영의정을 한 최항(1409∼1474)이 살던 집이었다. 그런데 1490년에 성종은 이 집을 사들여 요동질정관으로 중국에서 돌아온 탁영 김일손(1464∼1498)에게 하사했다. 김일손이 모친 봉양을 위해 사직을 청하자 모친과 함께 기거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