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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있는 곳
오피니언 칼럼

[어제보다 행복하기] 희망이 있는 곳

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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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판도라(Pandora) 이야기가 나온다. 제우스가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에게 주문해서 만든 인류 최초의 여자이다. 헤파이토스는 흙으로 여신과 닮게 빚어서 목소리와 힘을 불어넣었다. 여기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과 치명적인 매력을, 헤르메스는 기만과 속임수, 아첨과 꾀와 같은 교활한 심성을 심어줬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여인이 ‘모든 선물을 받은 또는 지닌(all-gifed 또는 all-giving)’이라는 뜻을 가진 ‘판도라’였다. 

제우스는 신만이 가질 수 있는 불씨를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를 벌주고, 불씨를 받은 인간들에게도 조치를 가했다. 판도라는 상자를 선물로 받았는데 그곳에는 세상의 모든 불행과 질병, 질투, 고통과 함께 희망이 들어 있었다.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부탁에도 호기심을 참지 못한 판도라는 그 상자를 열게 되는데 그곳에 있던 온갖 나쁜 것들이 다 튀어나왔다고 한다. 순간 놀라서 뚜껑을 닫았지만 이미 온갖 해로운 것은 다 나왔고 바닥에 깔려있던 희망만은 남게 됐는데 판도라는 그것마저도 꺼내 놓게 됐다. 

사람들은 희망마저도 재난에 해당하는 ‘쓸데없는 희망, 헛된 희망’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필자의 해석은 신은 그렇게까지 잔인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단 하나 희망을 남겨 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 다만 지나친 희망을 가지고 현재 누릴 수 있는 행복을 포기한다면 희망도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옥의 문’은 1880년에 시작해서 1888년에 완성한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작품이다. 단테의 ‘신곡’을 읽고 또 읽어서 ‘지옥’편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생각하는 사람’도 이 작품의 일부이다. 이 지옥의 문 꼭대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다고 한다. ‘이곳에 들어오는 너희여, 모두 희망을 버릴지어다.’ 지옥에 가게 되면 희망을 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반대로 희망을 버린 곳, 그곳이 바로 지옥일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요즘 뉴스도 많고 어수선하다. 사실 날짜를 지우고 보라면 도대체 1년 전 뉴스인지, 3년 전 뉴스인지, 5년 전 뉴스인지 구분이 안 된다. 우리는 늘 시끄러운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잘못한 사람을 억지로 찾아 처벌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게 답일까? 앞으로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고, 다시 점검하는 것들이 희망이 있는 사회의 모습 아닐까?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에 해결책이 나오고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생기고 그로 인해서 행복해진다. 희망이 있는 곳이 천국, 희망을 잃은 곳이 지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마지막에 남아 있을 희망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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