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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책’ 외규장각 의궤, 왜 ‘기록문화의 꽃’이라 부르나
문화 공연·전시

‘왕의 책’ 외규장각 의궤, 왜 ‘기록문화의 꽃’이라 부르나

국립중앙박물관 의궤 특별전
‘귀환 10년’ 297책 모두 공개
왕조의 정신적 문화 자산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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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1일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 언론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관계자가 외규장각 의궤를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10.31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병인양요(1866) 당시 프랑스 함대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外奎章閣 儀軌)’. 역사학자인 고(故) 박병선 박사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난 2011년 국내로 반환됐다. 145년 만의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의궤는 조선시대 중요 국가 행사의 전체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그 가운데 외규장각 의궤는 오직 왕만을 위해 만든 귀한 책이다. 생김새도 귀하지만 담긴 내용까지 귀하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을 통해 10년간 축적된 외규장각 의궤 연구 성과를 대중적인 시선으로 풀어냈다. 특별전은 11월 1일부터 내년 3월 19일까지 열리며, 외규장각 의궤 297책 등 460여점의 유물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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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궐영건도감의궤, 1832(순조 32)년’. 1829(순조 29)년 10월에 발생한 경희궁 대화재를 계기로 1830(순조 30)년부터 1831(순조 31)년까지 진행된 재건축의 내용을 담은 어람용 의궤.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2.10.31

외규장각 의궤

외규장각은 조선 왕실의 귀한 물건들이 가득 차 있는 보물창고였다. 금보와 옥책, 선왕의 보배 같은 글귀나 왕실 족보 등이 보관됐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이 의궤였으니, 오늘날 불리는 ‘외규장각 의궤’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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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국장도감의궤(상), 1659(현종 즉위)년’, 1659(효종 10)년 5월에 승하한 효종(재위 1649~1659)의 장례 과정을 기록한 어람용 의궤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2.10.31

‘의식의 궤범(軌範)’인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끝나고 그 전체 과정을 책으로 엮은 기록물이다. 보통 한번에 3부에서 많게는 9부를 만드는데, 그중 1부는 왕이 읽어보도록 올리고 나머지는 관련 업무를 맡은 관청이나 국가 기록물을 보관하는 사고(史庫)로 보냈다. 왕에게 올린 것을 어람용(御覽用), 여러 곳에 나눠 보관한 것을 분상용(分上用)이라고 한다. 외규장각 의궤는 몇 권을 제외한 대부분이 어람용이다. 

왕이 열람을 마친 후 어람용 의궤는 왕실의 귀한 물건들과 함께 규장각 또는 외규장각에 봉안했다. 후대의 왕들이 꺼내 보면서 예법에 맞는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왕을 위한 책 외규장각 의궤는 후세를 위한 모범적 선례이자 영구히 전해야 할 왕조의 정신적 문화 자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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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세자책례도감의궤(1784년, 정조 8)(왼쪽)’과 ‘문효세자 왕세자책봉 옥인’. 의례 때에는 왕세자임을 증명하는 상징물로, 옥으로 만든 도장인 옥인, 왕세자 책봉의 글귀를 적은 죽책과 교명을 하사했다. 의궤에는 크기, 재질, 무게는 물론 어떤 형태인지 알기 쉽도록 도설도 추가했다.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2.10.31


◆상세한 내용, 생생한 그림이 독보적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의궤의 가장 독보적인 가치는 ‘내용의 상세함’이다. 행사나 의례가 끝난 후 실무를 담당했던 도감(都監)에서 생산했거나 다른 관청으로부터 받은 공문서를 모아 그대로 베껴 엮었기에 일의 진행 과정이 모두 담겼다. 의궤 기록의 상세함은 실무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았다. 행사의 추진 배경, 다양한 층위에서 이뤄진 의사결정 내용 등 일이 진행돼 가는 맥락도 담아냈다. 결국 의궤는 행사 진행을 참고하는 단순한 결과보고서를 넘어 국가 주요 사업의 추진 원리와 지향점을 보여주는 국가 경영 지침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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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1일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 언론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외규장각 의궤를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10.31

의궤의 또 다른 독보적 특징은 ‘상세한 그림’에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의궤를 ‘조선 기록문화의 꽃’이라고 부른다. 다른 기록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아름다운 그림이 포함돼서다. 천연색으로 채색된 그림은 대상의 세부 특징을 잘 묘사했다. 의궤 속 그림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만이 아니다. 오늘날 사진처럼, 조선시대 국가 행사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시각적 자료로 사용됐다. 

임혜경 학예연구사는 “그림은 글자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직접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의궤 속 그림은 감상하는 그림이 아니라 ‘읽는’ 그림”이라며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목적을 가진 행사였는지, 예법에 맞는 의례 절차와 형식을 갖추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실록에는 1846년 헌종이 아버지인 익종(효명세자)의 능을 옮긴 일을 단 3줄로 남겼다. 반면 의궤에는 그 절차를 총 9책으로 자세히 기록했다. 행차 모습을 그린 반차도(班次圖)와 행사에 사용된 기물을 그린 도설(圖說)은 천연색으로 그려 현재도 어제 만든 것처럼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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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궐도안(西闕圖案, 19세기), 지금의 경희궁 전경을 그린 초본. 12장의 종이를 이어 붙여서 경희궁의 여러 전각과 주변 언덕의 자연경관을 담았다.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2.10.31

로써 구현하는 바른 정치 

또한 의궤는 내용적인 측면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의궤는 국가 의례나 행사에서 모범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해 제작됐다. 모범적인 의례란 바른 예법을 잘 따른 의례를 말한다. 의례에 맞는 예법을 규정한 것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같은 전례서라면, 의궤는 그 예법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의 경험을 모은 것이다. 국왕이 추구해야 할 바른 정치도 바른 예법을 따르는 데에서 시작된다. 

조선의 왕이 권위를 강화하고 왕실의 위상을 높이고자 한 것은 결국 질서를 잡아서 나라를 잘 이끌기 위해서였다. 임 학예연구사는 “예법으로 위엄을 갖춘 왕이 다음으로 할 일은 신하와 백성을 돌아보는 것”이라며 “조정이 안정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생활을 누리는 것, 그것이 바른 예를 실천함으로써 이루고자 한 바른 정치의 모습”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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