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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어제보다 행복하기] 주고받기

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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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통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소통(疏通)은 ‘막힌 것을 뚫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김창옥 강사의 강의를 들었다. 외국에 가서 강의를 했는데 청중에게 물어보니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곳 생활이 너무 만족스러운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곳 생활이 만족스러운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무척 잘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해서 이야기 거리도 안 되는 것 같은 유머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너무나 맞는 말이다. 어디 타국 땅에서만 그러랴? 고국에 살면서 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정말 소통에 문제가 없을까? 가족끼리, 친구끼리 우리는 자주 ‘말이 안 통해’를 외치면서 살고 있지 않은가?

내 말을 잘못 알아듣는 것 같아서, 또는 상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힘들어 한다.

소통이란 주고받는 것이다. 정말 좋은 소통은 먼저 잘 받고 그에 맞게 주는 것, 즉 받고 주기 여야 한다. 상대가 하는 말을 잘 듣거나 관심을 가지고 눈빛이나 태도 등의 바디 랭귀지까지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원하는 답을 이야기해 줄 수도 있고 내가 듣고 싶은 것에 대한 답도 들을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통은 말을 잘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말을 잘 하는 것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소통을 잘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그 자체가 소통은 아니다. 소통은 쌍방이 주고받아야 한다. 일방적인 것은 소통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말을 잘하는 사람 중에도 소통은 안 되는 사람이 많다.

소통은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다. 성경 구절에 나오는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과 같네’라는 말처럼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언변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결국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에 불과할 것이다.

언젠가 지하철을 탄 적이 있는데 노인석 외에는 자리가 없었다. 한 젊은이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봉을 붙잡고 졸고 있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노인석에는 앉을 수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 한 분이 일반석에서 노인석으로 자리를 빠르게 옮기면서 그 청년에게 손짓으로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앉으라는 사인을 해 주셨다.

대단하게 소통의 언어를 한 것은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소통이었다. 주변에 서있는 노약자가 없었으니 너무 피곤하면 앉을 수도 있었는데 앉지 않은 그 청년도, 그 청년을 앉히려고 움직여준 할아버지도 너무 멋있었다. 바라보는 우리까지 따뜻해졌다.

사랑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한 소통이다. 이렇듯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된다면 좋은 소통을 할 수 있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소통이 가능하다면 가까운 사람들과는 더더욱 소통을 잘 해야 한다.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노력해 보자. 조금 따뜻한 눈으로 사람들이나 세상을 본다면 훨씬 소통을 잘 하게 될 것이고, 소통을 잘하는 만큼 행복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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