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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재난은 불평등 문제다
오피니언 칼럼

[환경칼럼] 기후 재난은 불평등 문제다

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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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화석연료 종식’ ‘불평등 종결’ 등을 외치는 924 기후정의행진이 개최됐다. 2018년 그레타 툰베리와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의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시위로 촉발된 기후 위기 행동이 코로나로 중지된 지 3년 만에 다시 개최된 것이다. 이날 기후정의행진에는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기후정의 실현하라! 이제 우리에겐 기후혁명이 필요하다!” 등의 슬로건이 제기됐다.

이들은 기후위기 극복이 전지구적인 과제이지만 사실 기후위기의 주범은 ‘대규모 자연 파괴와 생태 학살을 당연한 것처럼 무한정 요구하고 용인하는 자본주의 체제’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기후위기를 불러온 주범인 자본주의 체제를 철폐하지 않으면 이 붕괴를 멈출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제 ‘착한 성자로 살아가는 개인의 실천을 넘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캠페인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924 기후정의선언을 했다.

사실 “기후 재앙의 원인은 자본주의”라는 주장은 그리 낯설지 않은 주장이다. 최근 콜롬비아의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는 유엔 총회 연설에서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생산하는 구조. 따라서 항상 한 줌의 소수가 더 많은 돈을 벌게 하는 구조가 기후 위기를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는 마약과의 전쟁을 핑계로 정글을 불태우는 미국의 위선을 비판하고, 아마존의 보존에 북반구 선진국이 더욱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며, 마약보다 더 지독한 중독은 ‘석유’와 ‘돈’, 이것이 곧 기후 재앙 시대를 열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후위기는 단순히 환경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회 문제다. 기후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지구인은 단 한 명도 없겠지만, 위기의 책임이 가장 적은 사람이 가장 먼저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당장 홍수나 태풍으로 인한 수해만 봐도 그렇다.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거나 반지하 같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생존의 위협에 직면한다. 노동자, 장애인, 아동, 노인, 유색인종, 이주민, 난민 등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약자와 소수자들은 폭염과 혹한, 홍수 등 기후재난의 고통과 피해를 언제나 더 많이 더 크게 받는 것이다.

전지구적으로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불평등 문제가 나타난다. 탄소배출량은 경제 규모와 산업화 지수와 비례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북반구의 선진국은 당연히 기후위기에 더 큰 책임이 있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은 남반구 저개발 기후취약국들이 기후 재앙의 직격탄에 맨 먼저 노출돼 있다. 선진국은 기후 취약국에 대한 보상에 인색하고, 아예 외면하기도 한다. 한 국가 내에서는 대규모 탄소배출 기업과 시민의 기후 불평등 관계가 심각하다. 개개인의 탄소배출량에 비해 기업의 배출량은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크고 많다. 그래서 기후위기는 결코 자연재해가 아니다.

기후정의가 이루어지려면 국가 간이든 한 사회 내에서건 불평등 문제가 해소돼야 한다. 기후위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탄소배출에 더 큰 책임을 가진 국가와 정부, 그리고 기업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이행하고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것, 또 이와 더불어 사회가 기후위기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보거나 혹은 낙오되거나 배제되는 사람이나 나라가 없이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최소한 이 두 가지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기후위기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공산이 크다. 적어도 가난한 우리 이웃들에게는.

최근 파키스탄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몬순으로 1천명 이상이 사망하고, 3300만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1억의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50만 채 이상의 가옥이 파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파키스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이 피해가 더 심했다. 이번 재앙적인 홍수 사태를 ‘기후재난’으로 공식화한 파키스탄 정부는 세계에 원조를 요청하고 있지만 북반구 선진국의 태도는 미지근하다.

제이슨 히켈에 따르면, 행성 경계(350ppm)를 넘어가는 탄소 배출량의 92%의 책임이 잘사는 북반구에 있다. 파키스탄은 행성 경계 내에서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이 기후 재난의 책임은 전적으로 잘사는 자본주의 국가들에 있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동정이 아니라, 기후 부채에 대한 책임으로 당연한 보상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불평등이 배제된 기후정의는 없다.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평온한 일상, 청명한 가을 하늘은 지구 저편의 고통 위에 펼쳐져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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