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조선후기 문신,학자 석호 윤문거 서세 350주년 추모(6)
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조선후기 문신,학자 석호 윤문거 서세 350주년 추모(6)

image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윤문거(尹文擧)는 1672(현종 13)년 5월 부여 석성 증산장에서 공주 만회리로 이거(移居)하였으며, 10월 8일에 평창이씨(平昌李氏)의 상을 당하였다.

그런데 20일 후인 10월 28일에 장구동 재사에서 향년(享年) 67세를 일기(一期)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는데 부인과 같은 해, 같은 달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기묘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석호(石湖)가 세상을 떠난 이후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26권, 현종 13년 10월 28일자 기사에 게재된 내용을 인용한다.

“문거는 자(字)가 여망(汝望)으로 성품이 침착·차분하고 꿋꿋하였다. 젊어서 과거에 올라 이름난 벼슬을 두루 지냈고 정축년 이후로는 벼슬길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효묘조(孝廟朝) 때 외임으로 동래부사에 제수하여 내보내니 변방 수령인 이유로 감히 거절하지 못하였다. 

그만두고 돌아와서는 마침내 시골에 박혀 지냈는데 연이어 삼사(三司)의 장관으로 특별히 불렀다. 금상(今上) 초기에 소신을 굽히고 서울에 왔다가 금세 사직하고 돌아가서는 끝까지 취직(就職)하지 않았다. 그가 용감히 물러난 일절(一節)만큼은 옛사람에게도 손색이 없었다. 이때 와서 졸하니 향년은 67세이다. 

그의 아우 선거(宣擧)는 산림에 은거하여 학문에 힘쓰고 몸가짐을 조심함으로써 중한 명망을 받았으나 결점이 없이 순수하기로는 사람들이 또 문거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또한 윤문거의 조카가 되는 윤증은 그가 지은 석호의 묘표(墓表)에서 그의 생애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선생은 타고난 자질이 독실하였고 가정에서 가르침을 받아 내면의 세계에 마음을 집중하였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보존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몸으로 실천하고 외물을 접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진실한 마음을 근본으로 삼았고 조금도 가식적인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신독(愼獨)과 수약(守約)의 공부를 나이가 들어서도 게을리하지 않아 덕이 높아질수록 예는 더욱 공손하였고, 몸을 낮출수록 도(道)는 더욱 높아져 밖에서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빛을 발하였다. 덕행(德行)과 도량(度量)을 하늘로부터 타고났으며, 장중하고 과묵하여 사람들이 멀리서 바라보기에 두려운 마음을 갖게도 했지만 진정으로 남의 아픔을 함께하는 어진 마음이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었다.” 

끝으로 석호(石湖) 윤문거(尹文擧)의 서세(逝世) 350주년을 숙연한 심정으로 추모하며, 그의 생애가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지길 바라 마지않는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채널: 천지일보
  • 전화: 1644-7533
  • 이메일: newscj@newscj.com
저작권자 © 천지일보 - 새 시대 희망언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지면구독신청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