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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 장례식이 뭐길래?
오피니언 칼럼

[박병환의 줌인] 영국 여왕 장례식이 뭐길래?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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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런던에 도착한 윤석열 대통령은 당일로 예정됐던, 여왕의 관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 홀 방문을 교통 체증 때문에 하지 못하고 19일 장례식에만 참석했다. 이를 두고 야당은 ‘홀대를 받았다’ ‘일부러 조문을 취소했다’ 등 주장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비슷한 시간대에 도착한 나루히토 일왕은 저녁 늦게 조문해 윤 대통령과 비교됐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여왕 장례식 참석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야당이나 언론에서 영국 여왕 장례식에 굳이 한국 대통령이 참석해야 하느냐며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을 법한데 그런 의견 표출은 없었던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앞서 주한 영국 대사관을 찾아 조의를 표했다. 현직 대통령이 영국 대사관에 설치된 조문소를 방문해 조의를 표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 국가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예를 갖춘 것 아닐까? 현직 대통령이 해외 조문에 나선 것은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국장에 참석한 이후 약 7년 만이다. 그런데 영국 왕이 세상을 떠난 경우에도 한국 대통령이 꼭 장례식에 참석해야 할까? 역사적으로 과연 영국은 한국에 어떤 나라인가? 제국주의 시절 대외관계에서 러시아의 남하 저지가 핵심 목표였던 영국은 1885년 러시아가 부동항(不凍港)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의 동해안 영흥만 일대를 점령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조선 조정의 아무런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남해에 있는 거문도를 2년간이나 무단 점령했다. 러시아를 견제하던 영국은 일본을 대러시아 전략에 활용하기 위해 1902년 일본과 소위 1차 영일 동맹조약을 맺고 러일 전쟁 때 일본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으며 1905년에는 2차 영일 동맹조약을 체결해 일본의 조선 침탈을 지원했다. 물론 영국은 자국의 국익에 따라 행동한 것이지만 결과를 놓고 이야기하면 우리로서는 원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나라이다. 영국은 또한 미국이 1951년 샌프란시스코 대일본 강화회의에 한국도 초청하려 했을 때 일본과 함께 강하게 반대해 결국 한국은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영일동맹이라는 특별한 관계에 따라 2차대전 때 양국 사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일본 사회에서 영국에 대한 호감도는 매우 높았다. 일본이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조선을 수월히 침략할 수 있었던 데에 영일동맹이 큰 역할을 한 결과 일본의 영국에 대한 태도는 긍정과 미화 일색일 수밖에 없었고 이런 인식이 식민지 조선 사람들에게 학교 교육이나 언론을 통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도 영국에 대해 막연한 긍정적 정서가 자리 잡은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영국에 대한 객관적 인식은 미흡하다. 한국 사회는 해방된 지가 70년이 넘었는데도 일본의 식민지배를 사무치게 증오하는 데 반해 영국이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만행과 착취에 대해서는 정확한 지식도 없고 투철한 인식도 없다. 일본 제국주의는 ‘악’이나 영국 제국주의는 ‘선망’의 대상인가? 영국 BBC방송은 여왕 사망 보도에 여왕 재위 시절은 물론 과거 아프리카에서 영국이 저지른 만행과 착취를 성토하는 댓글이 쇄도하자 그 글들을 모두 내렸다고 한다. 이번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해준 여왕에 대해 깊은 애도와 존중을 표할 것”이라고 했는데 6.25 전쟁에 참전한 영국 장병 개개인에게는 감사해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영국의 파병은 러시아(소련)를 견제하는 전통적 외교정책과 2차대전 이후 패권 국가로 등장한 미국을 돕는다는 고려의 결과이다.

한국은 미국과 같이 혈연적으로 역사적으로 영국과 특수한 관계에 있지도 않으며 일본처럼 동맹 관계를 구가했거나 왕실 간에 특별한 유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 유럽 국가가 아니고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처럼 영연방의 일원도 아니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21세기 현재 영국은 우리의 여러 우방 가운데 하나이고 북한과도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이다. 한 마디로 양국관계가 대단히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

국제관계에 대해 사실상 문외한인 윤 대통령에게 취임 초기에 다양한 국제무대 경험을 쌓을 기회를 제공하려는 외교안보팀의 충정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장례식과 관련해 한국 대통령도 공식적인 VIP 명단에 들어있었지만, 과연 영국 왕실에서 특별히 챙기는 내부 명단에 올라 있었을까? 더구나 여러 측면에서 볼 때 누가 봐도 우리 측에서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밖에 없어 현지에서 윤 대통령의 좋은 모습을 연출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나? 앞으로는 대통령의 외국 방문과 관련해 외교안보 참모들이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하고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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