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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水醬)
오피니언 칼럼

[걸공(乞空)의 음식칼럼] 수장(水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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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만든 간장(艮醬)은 구이나 두부 찬품을 위한 훌륭한 조미료가 된다. 이 간장(艮醬)을 담수장(淡水醬)·담장(淡醬)·물장·무장이라고도 한다.

조선 중기 김수(金綏, 1491~1552)가 지은 ‘수운잡방(需雲雜方)’과 1923년에 위관(韋觀) 이용기(李用基, 1870~1933)가 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는 간장 만드는 방법으로 수장법(水醬法)과 무장법이 있다.

‘수운잡방’에는 “20말들이 독에 메주 1말가량을 독 바닥에 먼저 깔고, 독 중간쯤에 다리를 걸고 발을 편 다음 메주 7말을 발 위에 얹는다. 물 8동이를 끓여서 소금을 섞어 붓는데, 물 1동이당 소금 8되 비율이다. 익으면 발 위의 장, 메주 7말을 걷어 내고 수장은 항아리에 옮겨 넣어 두고 사용한다. 두부를 조리할 때 넣는 즙인 포즙(泡汁)이나 구이를 조리할 때 넣는 즙인 적즙(灸汁)을 만들 때 쓰면 좋다. 평상시에 사용하는 장독에서 간장을 너무 많이 떠내어 장이 마르면 수장을 덧부어 쓰면 좋다”라고 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3달 안에 잘 띄운 바싹 마른 작은 메주 4~5개를 잘 씻어서 채반에 건져 다시 햇볕에 바싹 돌덩이같이 말린다. 이것을 다시 한번 씻어 좋은 물과 합하여 항아리에 담는다. 대략 물 1사발에 작은 주먹만 한 크기의 메주 2/3분량 정도를 넣는다. 항아리에 다 담으면 꼭지와 씨를 없앤 붉은 통고추를 넣는데, 물 1사발에 고추 2개 정도를 넣는다. 뚜껑을 꼭 닫고 차게 익힌다. 겨울은 7일, 여름은 3~4일이면 익는다. 뚜껑을 열어 보아 메주덩이가 떠올라오면 익은 것이다. 그때 비로소 소금을 넣어 슴슴하게 간을 맞춘다. 떠서 먹을 때에는 고춧가루를 쳐서 먹는다. 두부를 집어넣었다가 수일 후에 메주덩이와 함께 떠서 먹으면 고소한 맛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채로 썬 파와 초를 조금 넣고 먹는다”고 했다.

수장은 조선 초기부터 1900년대 초까지 두부와 구이의 조미료로 즐겨 먹던 장류이다. 1795(정조 19)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연을 위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顯隆園) 원행(園幸)길에 오른 윤 2월 10일, 혜경궁 홍씨와 정조의 조수라(朝水刺)에 수장증(水醬蒸)이 올랐다. 수장증을 곁들여 올린 찬품은 연계구이(軟鷄灸伊)와 붕어구이(鮒魚灸伊)인데, 수장증의 증(蒸)이 암시하듯이 그냥 올린 것이 아니라 시루에 올려 열을 한 번 가한 것이다.

수장은 소선(素膳) 식품의 하나였다. 1575(선조 8)년 1월 명종비 인순왕후 상중에 삼공이 선조를 문안한 뒤에 선조께서 초상이 난 후 닷새가 지나도록 수장도 드시지 않고 곡을 멈추지 않아 몸이 매우 상하셨음을 걱정해 타락죽을 권했다. ‘선조실록’ 1575(선조 8)년 1월 20일 내자시(內資寺)와 예빈시(禮賓寺) 두 관사의 축난 감간장(甘艮醬)과 맛이 나쁜 감간장은 내버려 두고 징수하지 말라 했으며, 예빈시(禮賓寺)에서 간장(艮醬)을 받으려고 내자시(內資寺)의 관원이 본조(本曹)의 관문(關文)을 위조했다고 나온다. <인조실록>

정조 때는 각 읍의 수령들이 데리고 오는 벌레 잡는 일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하례의 양미(糧米)는 규례대로 지급하며 찬가(饌價)로 수량을 보태서 마련하고 감장(甘醬 단장)과 간장(艮醬)까지 함께 나눠 줬다. <‘정조실록’ 1798(정조 22)년> ‘진연의궤(進宴儀軌)’에 보면 전선사 내숙설소(典膳司內熟設所)에 ‘표고간장(蔈古艮醬)’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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