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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극에서 다극’ 푸틴이 밝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
국제 기자수첩

[기자수첩] ‘단극에서 다극’ 푸틴이 밝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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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에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언급해 외신 등 언론계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사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뉴시스)

푸틴 국제질서노골적 언급

유라시아 중심 의지 표출해

질서 기준으로 국제법제안

국제사회, 미러 관계에 관심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낡은 단극(unipolar)’ 세계질서는 끝났다. 지정학과 글로벌경제, 국제관계의 모든 체계상의 진정 혁명적인 지각변동(tectonic changes)은 근본적이고, 기축적이고 변경불가능한 것이다.”

지난 61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에서 한 연설의 일부다. ‘새로운 세계질서를 선언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선언이 어떻게 나왔고, 어떤 세계를 새롭게 그려나갈지 지구촌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이 선언이 나온 시점부터가 절묘하다. 공교롭게도 20216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 1주년에 나온 선언이기 때문이다. 큰 그림을 자주 봐온 미중러 언론인들은 회담 약 8개월 뒤 시작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224)이 미러의 교감 속에서 나온 이벤트이며, 이후 큰 스케일의 국제질서 변화가 예고된다고 수군거렸었다. ‘음모론도 검증될 때까지는 유력한 일거리로 품고 있어야 하는 언론인다운 발상이다. 다시 말하지만, 큰 그림을 자주 봐온 대국의 언론인들끼리 나눈 얘기니, 참고만 해야 한다.

푸틴 대통령의 구체적인 설명은 한 달쯤 지나서 나왔다. 지난 712일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특수군사작전이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그들이 패배했음을 간파했어야만 했다며 새로운 세계질서의 대강을 설명했다.

그는 특별군사작전이 시작된 것 자체가 미국 세계질서의 근본적인 붕괴의 출발을 의미한다자유-세계주의 미국 중심주의에서 진정한 다극세계로의 이행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특히 미국이 단지 패권을 향한 욕망으로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 놓은 이기적인 규칙위선적인 이중잣대라고 비판했다.

하루 전 블링컨 국무장관이 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규칙기반질서를 언급한 데 대한 대답이었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의 규칙기반질서는 곧 자유민주주의이고, 중국의 질서는 편협하다(illiberal)’는 표현을 썼다. 푸틴 대통령은 블링컨 장관의 규칙기반질서는 미국이 미국만을 위해 만들어 놓은 배타적인 개념이라면서 대안으로 국제법을 제시했다.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모든 국가들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결과가 진정한 지구촌의 규칙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푸틴 대통령은 법대 출신이다.

그는 국제법과 진정한 인민주권(sovereignty of peoples) 및 문명, 자신의 역사적 운명, 자신의 가치와 전통 속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에 기반하는 규칙만이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침 이날은 러시아가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차세대 다탄두 각개목표 재진입 미사일(MIRV)’RS-28 사르맛(Sarmat)을 시험발사한 날이다. 사르마시안(Sarmatian)은 기원전 4세기 이후 남러시아를 중심으로 세력을 펼쳤던 기마민족을 가리킨다. 미국 중심의 서방이 주도하던 기존 세계질서를 유라시아 중심의 질서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역사적 선언이 나온 상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 며칠 전인 61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비전쟁 군사행동요강에 서명했다. 대만을 향한 중국의 특수군사작전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224일 특별군사작전직전인 지난 24일 당시 베이징 동계올림픽 경기장에서 마주한 중러 정상은 공동선언을 했다. 이념적 접근을 지양하고 무한협력을 약속한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기사에서 냉전 시대의 정치·군사 동맹보다 우월하다(superior to political and military alliances of the cold war era)”고 양국 정상의 공동선언에 대해 논평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변곡점으로 중·러의 전략적 제휴와 미·유럽연합(EU) 대서양동맹과의 거대한 균열이 드러나고 있는 점이 현 시기 지구촌 변화의 가장 뚜렷한 지점으로 보인다.

이런 시각은 러시아나 중국, 비판적 학자들의 시각만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매달 업데이트 하는 세계경제전망에서 세계경제는 계속 파편화되고 있으며, 파편화로 현재 식량위기는 상시화 될 수 있고,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다자협력의 효율성도 감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IMF는 중기전망에서 우크라 사태를 계기로 세계경제가 서로 다른 기술표준과 국제결제시스템, 기축통화를 갖춘 지정학적 블록으로 더욱 파편화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도 중국처럼 굴기(벌떡 일어섬, 崛起, rising)’를 선언했다. 중국이 내건 일대일로에 견주자면 유라시아 프레임워크또는 유라시아주의로 표현할 수 있다. EU는 유럽에서 군사적으로 러시아를 이길 수 없고, 유럽과 미국 등 서구는 중국과 러시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점이 러-우크라 전쟁 사태에서 검증된 사실이다.

독일은 러-우크라 전쟁으로 전임 메르켈 정부가 이뤄놓은 싼 천연가스 기반(노르트스트림2)을 포기하는 모양새다. 대신 군사 재무장을 재빨리 선언했다. 미국과 주고받은 옵션이 나쁘지 않다. 다만 에너지 의존이 높았던 친러노선을 전면 폐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겉으로 독러 우호관계를 분쇄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관찰될지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우크라 간 화해를 중재해 유럽 역내 영향력을 넓히고자 했던 프랑스의 외교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최근 세계박람회에서 한국 대신 사우디 쪽 지지선언을 한 것으로 봐, 기울어가는 서방에서 미리 발을 빼는 모양새가 아닌지 주목된다.

노골적인 침략 야욕을 드러내는 폴란드 극우성향 정권이 스탈린에 의해 우크라이나에 귀속된 르보프(리비우)등 동갈리시아 지방에 이른바 평화유지군명목의 폴란드 군대를 주둔시키려 한다는 얘기도 있다. 러시아가 비우호국자 목록에 포함시킨 한국은 폴란드에 무기 수십조원을 팔게 됐다고 자랑하고 있다. 33주년을 맞는 한러수교의 가치가 무기값 25조원 정도인지, 윤석열 정부가 판단할 것이다.

중동국가들이 이번 러-우크라 전쟁 사태에 보여준 태도는 흥미롭다. 사우디는 움직이지 않았다. 앞서 무조건미국편을 들었던 이스라엘 역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우디를 견제하는 터키는 중동 역내 주도권을 겨냥, 미국과 적절한 긴장을 유지해왔다. 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서도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중재자 지위를 공고히 해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다혈질 지도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결론은 러시아, 중국, 이란이 미국 중심 서방의 패권에 맞서 유라시아 중심의 세계질서를 구축해 나가는 지정학적 대전환의 시점이다. 한국 정부가 대전환 조짐을 알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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