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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준비위원회 기념관’을 제안한다
오피니언 칼럼

[세상 요모조모] ‘건국준비위원회 기념관’을 제안한다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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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여운형 선생 탐방 길라잡이를 하고 있다. 선생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아보고 선생이 살던 시대를 느끼고 아파하며 오늘의 나와 우리를 되돌아보자는 뜻에서다. 서울지역에서 활동한 곳만 해도 하루에 다 돌 수가 없다. 그 정도로 선생의 활동은 활발하고 광범위했으며 곳곳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선생의 발자취를 찾는 공공기관의 움직임은 없고 거대한 역사 발자취인 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결성된 곳 앞에는 표지석조차 없다. 건준의 모태가 되는 건국동맹은 표지석이 있긴 하지만 엉뚱한 곳에 설치돼 있다.

건국동맹은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힘을 모은 통일전선 조직이자 일제 식민지 시기 전국적인 항일 지하조직이다. 건국동맹도 건국준비위원회도 국가 차원에서 기념하지도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지도 않는다. 여운형 선생의 삶도 제대로 알리거나 기억하고 있지 않다. 선열들의 독립운동을 기억하지 않는 나라는 나라로 불릴 자격이 없다. 대한민국은 왜 건국준비위원회도 건국동맹도 기억하지 않는가?

여운형 선생의 발자취의 많은 부분은 서울 종로구에 남아 있다. 선생의 활동을 기억할 건물은 대부분 사라지고 일부만 남았지만 건물 아래 땅은 그대로다. 선생과 함께한 선열들을 기억하고자 한다면 그 땅 위에 흔적을 남기는 후손이 돼야 하고 후손들이 그 땅을 찾고 또 찾아 동네 사람들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모두 기억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종로구청과 서울시, 정부는 나태함을 버리고 분발해서 여운형 선생의 발자취를 시민들과 후손들이 느끼고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종로구청과 서울시에 바란다. 현대건설 계동 사옥 바로 옆에 있는 보헌빌딩 앞에 건국준비위원회 표지석을 세우고 건국동맹 표지석을 제자리로 옮기며 여운형 선생의 집터를 복원할 것을 제안한다. 해방이 됐다는 걸 공개적으로 알린 최초의 군중 집회가 열린 현대 계동 사옥 자리에 표지석을 세워라.

여운형 선생 집터 바로 옆에는 송진우 선생의 호를 딴 고하로가 있다. 몽양로는 없다. 선생을 기리는 몽양로 개설이 시급하다. 몽양로 개설이 당장 어렵다면 명예도로명으로 ‘몽양 여운형길’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일제가 패망하게 되자 총독부는 조선에 있는 80만 일본인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선 민족의 지지를 받고 있고 건국동맹이라는 비밀 지하조직의 대표를 맡고 있던 여운형 선생에게 치안권을 넘겼다. 8월 15일 아침 일찍 선생은 조선 총독을 대리한 엔도 정무총감과 만나 독립운동가를 석방하고 치안권을 넘기며 건국 사업에 간섭하지 말고 3개월치 식량을 확보할 것 등 5개 항을 제시해 담판을 지었다.

이에 따라 당일 조선 헌병대사령부에 갇혀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석방됐고 다음날 오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던 독립운동가들이 모두 석방됐다. 곧이어 지역의 형무소에 갇혀 있던 독립투사들도 모두 석방됐다. 얼마나 장쾌한 일인가! 일본제국주의는 사실상 여운형과 건국동맹에게 항복을 한 것이다. 이런 날을 국가의 이름으로 기념하지 않으면 어떤 날을 기념한단 말인가?

여운형 선생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8월 15일 저녁 지금의 계동에 있는 임용상의 집에서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다음날 서울 와이엠시에이(YMCA)에서 건국준비위원회 발족식을 열었다. 이곳 역시 표지석이 없다.

건국준비위가 만들어진 뒤 보름만에 전국에 145개의 지부가 결성돼 치안 확보와 건국 사업에 매진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지부가 전국에 걸쳐 만들어진 것은 조선 민중의 뜻이 결집된 유일무이한 조직이라는 걸 뜻한다. 건준은 사실상 국가의 역할과 기능을 했다. 그래서 제안한다. 정부와 서울시는 ‘건국준비위원회 기념관’을 건립하라. 한시가 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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