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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꽃이라 불리는 작약(芍藥)
오피니언 칼럼

[걸공(乞空)의 음식칼럼] 함박꽃이라 불리는 작약(芍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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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통나무를 안쪽으로 파서 만든 바가지인 함지박과 비슷하여 ‘함박’이라 부르며, 함지박처럼 크게 입을 벌리고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로 ‘꽃이 탐스럽게 핀다’해서 한문으로는 ‘함박꽃 작(芍)’ ‘약 약(藥)’자를 써 ‘작약(芍藥)’이라 했다. 

중국에서는 ‘정이 깊어 떠나지 못한다(依依不舍, 难舍难分)’는 꽃말도 가지고 있어 연인들이 자주 선물하는 꽃이라고 한다. 작약지증(勺藥之贈)이라 하여 남녀 간에 향기로운 함박꽃을 보내어 정을 더욱 두텁게 함을 이르는 말도 있다. 

함박꽃과 비슷한 꽃으로는 모란이 있다. 그러나 함박꽃과 모란은 엄연히 다르다. 함박꽃은 풀(草)이고 모란은 나무(木)다.

그러나 정식으로 함박꽃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도 있다. 바로 산목련이다. 흰 빛깔이 정갈하게 곱고, 꽃망울을 터트리면 노란색의 암술과 보라색의 수술이 어우러져서 꽃이 예쁘게 피는데 남한에서는 함박꽃나무로 불리고 북한에서는 목란으로 불린다.

우리 역사에 모란과 작약이 등장하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 편에 당 태종이 선덕여왕 앞으로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과 그 꽃씨 석 되를 보내왔다. 

선덕여왕은 당 태종이 보낸 그림의 꽃을 보고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이 꽃은 정녕코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왕의 말이 무슨 뜻을 내포하는지 모르는 신하들이 의아해하며 여왕을 바라본다. 그러자 여왕은 신하들에게 함께 보내온 꽃씨를 바로 앞뜰에 심도록 한다. 꽃씨를 심은 후 신하들이 그 꽃이 피고 지는 동안 여러 번 꽃의 냄새를 맡아보니 꽃에 향기가 없다. 과연 여왕이 처음 했던 그 말과 같았다. 당시 여러 신하들이 여왕에게 “어떻게 그렇게 될 줄 아셨습니까?”라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꽃은 비록 고우나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此花絶艶 而圖畫又蜂蝶 是必無香花). 이는 당 황제가 나의 배우자가 없음을 빗댄 것”이라고 전해진다. 

작약(芍藥)을 최초로 기록한 책은 본초 전문서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인데, 이 책에 작약(芍藥)은 “맛이 쓰고 기는 평탄하다. 사기(邪氣)로 인한 복통을 주관하고 혈비를 없애고 견적, 한열, 산가(疝瘕, 전립선염과 유사함)를 파괴하고 통증을 그치게 하고 소변을 순조롭게 하고 익기한다”라고 돼 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고려 때 충렬왕은 원나라 세조(世祖) 쿠빌라이의 외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왕비로 맞았다. 왕비가 된 공주는 어느 날 수녕궁(壽寧宮) 향각(香閣)의 어원(御園)을 산책하다가 작약이 탐스럽게 피었으므로 시녀에게 명하여 한 가지를 꺾어오게 하였다. 한 가지를 꺾어 들고 한참 귀여워하더니 그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눈먼 악사 한명이 노래를 불렀다. 공주는 그 노래가 하도 구슬퍼 귀를 기울여 한참 듣다가 깜짝 놀랐다. 그 노래는 왕자가 공주를 그리워하다 마침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왕자는 죽어 작약이 되어 이국땅에 살고 있다’는 슬픈 애화가 담겨 있다. 

작약은 봄에 줄기가 나와서 5∼6월에 핀다. 제국공주가 향각에서 소요하던 때는 5월이라 모란은 시들고 작약이 만개하였으며 송경(松京)의 궁에는 작약이 많이 심어졌는데, 제국공주도 이 아름답게 핀 작약을 보고 잠재의식 속에 생명의 무상함을 직관하면서 슬피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외에도 작약에 대한 전설이 있다.

서로 짙은 사랑을 나누던 왕자와 공주가 있었다.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나자 왕자가 전쟁터에 나가고 공주가 그를 기다리다 왕자가 전사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공주는 이러한 소문에 반신반의하며 왕자가 사는 나라로 갔다. 안타깝게도 왕자는 정말 죽었고 그 자리에 하얀 모란꽃이 피어있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후 슬픔에 잠긴 공주는 신에게 왕자와 함께하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이를 가엾게 여긴 신이 그의 부탁을 들어줘서 공주를 모란을 닮은 작약으로 만들어줬다고 한다. 

작약(芍藥)은 백작약(白芍藥)과 적작약(赤芍藥)이 있다.

조선시대 황도연(黃度淵, 1808~1884)이 한약의 처방을 설명한 의서 ‘방약합편(方藥合編)’의 방초(芳草, 향기 나는 한약) 편에 백작약(白芍藥)과 적작약赤芍藥)으로 구분되어 수재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한약 공정서인 ‘대한민국약전’에는 백작약과 적작약의 구분 없이 작약으로만 기재되어 있다. ‘중국약전’에는 백작약(Paeoniae Radix Alba)과 적작약(Paeoniae Radix Rubra)으로 나뉘어져 있다. 

작약(芍藥)을 최초로 기록한 책은 본초 전문서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인데, 이 책에 작약(芍藥)은 “맛이 쓰고 기는 평탄하다. 사기(邪氣)로 인한 복통을 주관하고, 혈비를 없애고, 견적, 한열, 산가(疝瘕전립선염과 유사함)를 파괴하고, 통증을 그치게 하고, 소변을 순조롭게 하고, 익기한다”라고 돼 있다.

조선시대 구암(龜巖) 허준(許浚, 1539~1615)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혈비(血痺)를 낫게 하고 혈맥을 잘 통하게 하며 속을 완화시키고 궂은 피를 헤치며(散惡血) 옹종(癰腫)을 삭게 한다. 복통(腹痛)을 멈추고 어혈을 삭게(消) 하며 고름을 없어지게 한다. 여자의 모든 병과 산전산후의 여러 가지 병에 쓰며 월경을 통하게 한다. 장풍(腸風)으로 피를 쏟는 것, 치루(痔瘻), 등창(發背), 짓무른 헌데, 눈이 출혈되고 군살이 살아나는(目赤努肉) 데 쓰며 눈을 밝게 한다. 일명 해창(解倉)이라고도 하는데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적작약은 오줌을 잘 나가게 하고 기를 내리며 백작약은 아픈 것을 멈추고 어혈을 헤친다. 또한 백작약은 보(補)하고 적작약은 사(瀉)한다고도 한다.’라고 나온다.

봄철에 나오는 작약의 어린잎을 따서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한다. 어린잎을 먹을 때에는 끓는 소금물에 넣어 데친 후 찬물에 헹구어 쓴맛과 독성을 제거한 후 찬물에 오래 담가두면 쓴맛이 대부분 제거된다. 뿌리를 약재로 쓸 때에는 가을에 뿌리를 채취하여 물에 씻어 햇볕에 말린다. 건조된 뿌리는 가루로 만들거나 그대로 물에 끓여 음용하면 좋다.

작약 뿌리는 뿌리를 진통제·해열제·이뇨제로 쓴다. 주요성분으로 페오노시드(paeonoside)·페오니플로린(paeoniflorin)·β-시토스테롤(β-sitosterol)·페오닌(paeonine)·갈로타닌(gallotanin)·벤조산(ben- zoic acid)·아스트라갈린(astragalin) 성분이 들어 있어 진통·두통, 치통, 복통·월경통·무월경·토혈·빈혈·타박상 등의 약재로 쓰인다. 

작약은 한방에서 주로 어혈을 풀어주는 데 이용하고, 혈관에 피가 뭉치는 것을 막아주며 혈액순환을 원할하게 해주어서 각종 심혈관 관련 질환을 완화하고 예방하는데 효과적이다.

작약이 위산이 과다로 분비되는 것을 억제해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고 염증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 위염이나 위궤양과 같은 위 관련 염증질환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설사 완화에도 좋다.

한편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해서 항바이러스 항균 작용을 해주는 면역력을 증진시켜 주고 염증성 질환을 개선하고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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