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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질 때면 - 양순복
오피니언 투고·기고

[마음이 머무는 詩] 노을이 질 때면 - 양순복

노을이 질 때면

 양순복

고향집 지붕 위로

낮게 내려앉은 달빛에

박꽃도 새하얗게 웃던 날

 

처마 끝에 등불 밝혀 놓고

마루 끝에 앉아

자식들 기다리시던 어머니

 

어서 가거라

해 저물기 전

어서 가 식구들 잘 건사하라

 

서쪽 하늘 노을 속에서

그날의 쓸쓸한 어머니가

자꾸만 손짓하신다.

 [시평]

박꽃은 7월에서 9월 사이에 핀다.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예전에는 시골집 초가지붕 위에 화려하지 않으면서, 소박하고 차분한 아름다움을 지닌 하얀 박꽃이 핀 모습은 그 풍경을 더욱 단아하게 만든다. 박꽃은 그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과 같이 꽃말이 ‘기다림’이다. 달밤에 하얗게 핀 박꽃을 바라보며, 집 떠난 사람이 무사하게 돌아오길 마음으로 빌었기 때문에 ‘기다림’이라는 꽃말이 붙었던 모양이다.

고향 시골집에 자손들이 찾아와 하루나 이틀 묵고는 자신들이 사는 도시의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처마 끝에 등불 밝혀 놓고, 마루 끝에 앉아, 얼마나 기다리던 자식들인가. 고향의 어머니야 떠나가는 자식들 며칠 더 머무르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그래도 어머니는 손을 휘여휘여 저으시며, 해 저물기 전 어서 가서는 식구들 잘 건사하라고 하신다.

이런 어머니를 뒤를 하고 자식들 고향집을 떠난다. 지금은 어머니도 안 계시고 고향도 사라진, 그래서 더욱 뵙고 싶은 어머니. 박꽃이 하얗게 피는 계절이 오면, 고향집 지붕 위로, 달빛을 받으면 새하얗게 웃고 있을 그 박꽃 생각이 절로난다. 서쪽 하늘 노을 속에서, 자꾸만 손짓하시는 그날의 쓸쓸한 표정의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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