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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 총리의 피격 죽음
오피니언 칼럼

[이재준 문화칼럼]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죽음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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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불교를 전래해준 백제 성왕(聖王, ?~554 AD)의 죽음에 대해 일본서기는 동기와 사실을 소상히 적어 남겼다. 서기를 쓴 사람이 백제에서 일본에 온 사람에게 사건 전말을 듣고 소상하게 적은 것이다. 우리 삼국사기에는 진흥왕 대 신라군과 백제군이 고리산성(지금의 옥천)에서 격전을 벌인 끝에 죽음을 당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성왕을 체포해 목을 벤 신라군의 이름과 직책까지 적고 있다. 보은 삼년산성에서 출전한 고간(高干)도도(都刀)가 구천을 지나는 성왕을 사로잡아 참수한 것이다. 도도는 그가 포로로 잡은 이가 백제왕임을 알면서도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며 목을 내놓으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성왕은 내가 일국의 왕인데 너처럼 하찮은 신분에게 목을 줄 수 없다고 저항했다. 그때 도도는 신분이 하천이라도 왕의 목을 벨 수 있다는 명분을 말했다.

“우리 신라에서는 임금이 한 입으로 두말을 하게 되면 신하가 임금의 목을 벨 수 있습니다. 백제가 우리 대왕과 한 약속을 저버리고 국경을 침범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

성왕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목을 내놓고 말았다. 고간은 지방 외직 중 세 번째로 급찬(級飡)에 해당되는 직위다. 그런데 도도는 신라 무사의 기품과 속성을 보여 주목되는 것이다. 적국의 왕이지만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며 시해하려는 뜻을 간곡히 아뢴 것이다. 이 태도는 유서를 공부한 무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일본 사관은 왜 이런 사실을 소상하게 기록한 것일까.

신라후기 왕궁에서는 잇단 정변과 왕들이 시해되는 일들이 많았다. 화랑 출신 왕족 무사들이 부도덕한 임금을 시해했던 것이다. 고려 공민왕은 자신이 데리고 있던 호위무사 자제위의 칼날에 희생됐다. 공민왕이 혼미한 정신으로 변태적 행위를 강요하자 심야에 시해한 것이다.

이 시기만 해도 일본에는 사무라이라는 명칭이 존재하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가야의 무사도가 닌자(忍者)를 통해 일본에 전래 됐다고도 하며 그 시기를 가야멸망 때로 잡기도 한다. 일본에 전래 되는 닌자의 설화가 신라 화랑도와 비슷하다. 머리에는 깃털을 꼽고 말을 타고 얼굴을 가리고 다니며 신출괴물로 사람들을 돕는다는 설화가 그것이다.

그러나 일본 학자들은 무사도(武士道. ぶしどう)가 등장한 시기는 13~16세기 이후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무사로서의 이상적인 자세나 사상에 대해 쓰여진 것은 적지 않게 있으나, 무사도라는 단어 자체는 후세에 의해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주군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놓지만 주군이 잘못했을 경우는 명분을 들어 시해했다. 비겁하지 않은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평소 우경화 바람을 주도하고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는 등 우익의 화신으로 자처한 아베 전 일본총리가 전직 해상자위대원이 쏜 총을 맞고 결국 소생하지 못했다. 지금 일본열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아베 전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지난 2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일부가 채택 중인 ‘핵 공유’를 일본에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위대 합법화를 위한 헌법 개정에 착수한 자민당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인가. 아베에게 총을 쏜 구체적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범인은 아베가 자신의 어머니가 가입하고 있는 특정 단체에 간여해 있다는 주장을 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직 총리를 살해한 이유로는 납득이 안 간다.

아직도 일본 국민 가운데는 제2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가 많이 남아있다. 아베 이후 혼돈의 일본이 또 어떤 길을 걸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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