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무더위 다스리는 옛 선조들의 여름나기
문화 전통문화

[문화곳간] 무더위 다스리는 옛 선조들의 여름나기

작은 더위 ‘소서’ 무더위 시작 
계곡물에 발 담그고 피서 보내
얼음물에 담근 제철 과일 즐겨

image
다산 정약용이 지은 ‘소서팔사(消暑八事)’ 시에는 더위를 없애는 방법 중 하나로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가 소개됐다. 사진은 조선 화가 김홍도의 ‘활쏘기’ 그림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2.07.04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지난 3일 올여름 첫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7일은 ‘작은 더위’라 불리는 ‘소서(小暑)’다. 절기상으로나 계절상으로나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온 것이다. 무더위가 지속되면 낮뿐 아니라 밤에도 잠 못 이루는 열대야가 찾아온다. 몸이 축축 늘어져 일상 생활에도 지장을 준다. 이젠 시원한 음료수와 선풍기, 에어컨이 없으면 견디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이마저도 없던 시절, 선조들은 여름철 더위를 어떻게 지혜롭게 이겨냈을까.

◆습도 높고 더운 바람 불고 

‘소서’는 1년을 24개로 구분한 24절기 중 열한 번째 절기다. 소서는 하지(夏至)와 대서(大暑) 사이에 들었다. 소서는 ‘작은 더위’라는 뜻으로 ‘큰 더위’를 뜻하는 ‘대서’에 앞서는 절기다. 

‘고려사(高麗史)’에 보면 소서는 15일간을 5일씩 3후(三侯)로 나눠,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귀뚜라미가 벽에 기어 다니고, 매가 비로소 사나워진다고 했다. 

이 기간에 장마전선이 한반도에 머물고 있어 습도가 높고 비가 많이 내린다. 소서가 시작되면 하지 무렵에 끝낸 모내기의 모들이 뿌리를 내려 논매기했다. 또한 퇴비 장만과 논두렁의 잡초 깎기도 시작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계절이므로 온갖 과일과 소채도 점점 풍성해지고 밀과 보리도 먹게 된다.

image
다산 정약용의 ‘소서팔사(消暑八事)’에는 더위를 없애는 방법 중 하나로 서쪽 연못에 핀 연꽃 구경하기가 나온다. 사징는 연꽃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산·계곡은 최고의 피서지

무더위가 시작 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은 산과 계곡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유월조(六月條)’에 보면 “서울 풍속에는 남산과 북악 계곡물에 발 담그기를 하는 놀이(濯足之遊)가 있다”고 했다. 지금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피서를 즐기니 여름철 풍속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했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63세에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시를 지었다. 그해 1824(순조 24)년의 조선은 유난히 더웠다. 더위를 없애는 8가지 방법인 소서팔사는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 하기, 시원한 대나무에서 바둑두기, 서쪽 연못에 핀 연꽃 구경하기,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등이 포함됐다. 

선비들은 이른 새벽 말을 타고 서대문 옆 서련지(西蓮池)를 찾았다. 서련지는 연꽃이 많고 꽃송이가 큰 것으로 유명했다. 선비들은 동틀 무렵 연못에 배를 띄우고 연꽃잎이 활짝 터지는 소리를 감상했다. 그리고 술을 마시며 풍류를 만끽했다. 

image
연산군은 다른 왕들과 달리 여름철 궁궐 뜰에서 잔치가 열릴 때 1000근(600㎏) 짜리 얼음 쟁반 4개를 동서남북을 깔고 에어컨처럼 사용했다. 사진은 얼음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천지일보 2022.07.04

◆‘얼음’ 활용법도 다양 

조선 임금들의 여름 피서법은 대체로 소박했다. 경복궁 경회루, 창덕궁 후원에서 더위를 피했고, 여름철 최고 피서 음식인 과일도 즐겼다. 기록에 따르면, 양력 6월부터 8월 초에 수라간에서는 임금님 수라상에 수박 1개와 참외 2개를 올렸는데, 과일을 차갑게 하려고 얼음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조선 영조(제21대 왕)는 가을보리로 만든 미숫가루를 여름철 건강식으로 먹었다. 미숫가루는 섬유질이 풍부해 소화기관이 약했던 영조에게는 안성맞춤인 피서 음식이다. 

반면 연산군의 피서법은 다른 왕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여름철 궁궐 뜰에서 잔치가 열릴 때 1000근(600㎏) 짜리 얼음 쟁반 4개를 동서남북으로 깔고 에어컨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조선의 세종(제4대 왕) 때인 1434년 여름에는 열병을 앓는 사람이 잇따랐다. 양반들은 그나마 열병 치료 약을 지어 먹었지만 백성의 사정은 심각했다.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다 죽기까지 할 정도였다. 백성들을 치료하던 활인원에는 열병으로 고통받던 사람이 몰려들었다. 이때 “백성들에게 부순 얼음을 주도록 하옵소서”라고 아뢴 예조의 건의에 따라 세종은 얼음을 내려준다. 또한 ‘경국대전’에는 매년 여름철 끝 달, 즉 음력 6월에 관청과 종친, 정3품 이상 관리, 의금부, 전옥서의 죄수들에게 얼음을 나눠줬다고 한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 새 시대 희망언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지면구독신청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