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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번의 ‘自由’ 외침… 자유대한민국의 그날이 오기를
오피니언 천지시론

[천지일보 시론] 35번의 ‘自由’ 외침… 자유대한민국의 그날이 오기를

이상면 천지일보 편집인.
이상면 천지일보 편집인.

근래에 들어와서 ‘자유’라는 단어가 이처럼 강조된 적이 있나 싶다. 자유대한민국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뭔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윤 대통령의 지난 10일 제20대 대통령취임식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가 무려 35번 등장했다. 무엇이 그렇게 자유를 갈망하게 했을까.

취임사의 내용과 방향은 당연히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도자로서 향후 5년간 꾸려 나갈 국정 철학과 기조가 녹아 있었을 터, 그렇다면 과거 정부 아니 지난 문재인 정부는 자유대한민국이 아니었단 말인지 국민들은 혼란스러울법한 대목이다.

자유, 이 자유는 ‘민주주의’의 그 자체며 가치며 심벌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민주주의의 정의와 가치는 퇴색돼 가기 시작했다.

우선 표면적으로 본다면 막스 레닌에 의한 사회민주주의가 등장하면서부터 상대적 개념으로 자유민주주의가 표방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하나의 이념(이데올로기, 신념) 논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로 인해 지구촌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 사회민주주의라는 두 축이 형성됐고, 오늘날까지 분열과 대립의 원흉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진정한 자유는 근본적으로 평등과 공정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서 평등의 개념부터 정리돼야 한다. 즉, 평등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다.

다시 말해 평등의 기준이 일한대로 갚아준다(대가를 받는다)는 것이냐 아니면 무조건 똑같은 대가를 받는 것이냐의 차이는 천지만큼이나 크다.

하지만 공산 사회민주주의에선 이같이 모순된 평등논리를 들고 나오면서 민주주의 가치관을 혼란케 해왔던 것이다.

인간의 이상적 추구를 파고들고 나아가 악용해 백성과 인민을 착취하는 구실로 삼아 왔으니 어찌 보면 천인공노할 대상일 따름이다.

문제는 아직까지도 우리 가운데 현실 불만세력의 출구 역할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은 여전하다.

해방 후 동족상잔의 상흔을 겪고 나서 산업화를 이루고, 그 후 민주화를 가져왔고, 그런 과정에서 특수계층은 산업화의 폐단을 교묘히 파고들어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이 강산 위에도 사회민주주의 건설을 기치로 수많은 조직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났고 그들이 뿌려 놓은 사상의 씨는 그동안 무럭무럭 자라 결국 오늘의 두 개의 진영으로 양분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소위 보수와 진보다.

보수(保守)는 말 그대로 국민과 국가를 지켜나간다는 의미다. 진보(進步)는 지키고만 있어선 안 되니 경쟁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서 나라를 발전시킨다는 의미다.

이 말을 하고 보니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국가 경영을 수레에 비유하자면 두 개의 수레바퀴가 있어야 굴러가며, 바퀴 하나가 빠지면 제 자리에 주저앉아야 한다. 그렇다면 보수와 진보는 서로 죽여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상호 경쟁하면서도 인정해야 하는 대상임을 이치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보수와 진보의 정의와 논리가 아닌 사람과 편을 모으는 패거리 내지는 모리배로 전락했다는 서글픈 사연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분별할 때 진정 생각이 자유로워지고 나와 우리와 나라가 나아갈 방향이 선명해져 편견과 편향이 사라진 진정 자랑스런 자유대한민국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금번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의 외침은 지금까지 갇혀 있던 국민 의식에서 벗어나 모든 국민이 헤쳐모일 때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자유의 물결이 일어 자유대한민국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 윤석열의 자유 외침이 단순 진영논리에 갇혀 상대를 지적하고 폄훼하기 위한 발언은 아니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청와대를 국민의 품으로,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는 역대 그 누구도 실행치 못하고 생각만으로 끝나야 했던 대 역사다.

그러나 무엇이든 시작하는 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국민들에게 보여 준 결단력과 실행력은 진실했고 순수했고 솔직했고 과감했다.

그러한 큰 그릇의 기개로 분열된 대한민국이 아닌 하나의 자유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35번의 ‘자유’ 외침이었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모순과 왜곡과 위선과 위장은 진영과 같은 방패막이를 앞세우게 되고, 그 뒤에 숨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유 또는 자유한 자는 솔직하고 순수하고 진실할 수밖에 없으니 곧 이치다.

진정한 자유인은 자기만의 생각과 고집과 아집과 틀과 형식과 진영을 무너트리고 그 틀 속에서 껍질을 깨고 나오게 돼 있다.

왜 그럴까. 자유하기에 굳이 갇혀 있고 숨어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진정한 자유대한민국에서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 자유로운 세상에서 그야말로 자유의 날개를 펼치며 자유롭게 살아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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