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조달청, 대-중소기업 간 공정 입찰 환경 마련해야”
기획 경제·산업·유통 기획 이슈in

[이슈분석] “조달청, 대-중소기업 간 공정 입찰 환경 마련해야”

not caption

정부, 학교 태블릿PC 보급 중

대규모 사업에 기업들 ‘눈독’

제품 입찰 과정서 中企 배제돼

中企 “말도 안 되는 규격 기준”

“조달청 설립 취지에 안 맞아”

교육청 “학교가 원해 정한 것”

[천지일보=손지아 기자] “조달청의 존속 이유는 공정하고 투명한 입찰 과정을 통해 물품을 구매해 국가 경제와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함입니다.”

9일 중소업체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현재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가 길어지면서 디지털 교과서 보급사업의 일환으로 태블릿PC를 구매해 각급 학교에 보급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인 1태블릿PC 보급이 목표이며 5개년 4조 3000억원이 투입되는, 규모가 아주 큰 사업이다. 때문에 기업 규모를 불문하고 웬만한 사양의 태블릿PC를 만들 수 있는 업체라면 다 이 사업에 눈독을 들인다.

교육청은 조달청을 통해 태블릿PC 등 사업 물품을 구매한다. 조달청은 계약 방식에 따라 사업자들에게 구매할 제품의 사전규격을 공고한다. 규격에 맞는 제품을 가진 사업자는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교육청, 대기업에 일감 몰아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과정에서 절차가 불공평하다는 중소기업의 볼멘소리가 나왔다. 정부가 일감을 대기업에만 몰아주고 있다는 게 요지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교육청이 공고한 사전규격과 입찰 방식을 두고 ‘KT·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독점을 교육청이 돕고 있다’는 의혹을 품고 있다.

이는 사전규격과 계약 방식이 중소기업이 공정하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목표로 하는 ‘중소기업 상생’ 정책에 어긋나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입찰 방식은 두 가지다.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과 ‘다수공급자 계약 제도’다.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은 기술, 예술성, 안전성의 측면에서 기술평가위원들이 주는 점수와 가격에 대한 점수를 합산해 높은 점수를 받은 사업자가 최종 입찰된다.

문제는 기술평가위원들의 점수를 항상 KT가 최고점을 받았고 중소업체는 그의 2/3 수준의 형식적인 점수만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가격 점수보다 위원들의 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크기 때문에(KT의 경우 보통 위원 점수:가격 점수=9:1) 이렇게 되면 KT는 어떤 가격으로 태블릿PC를 공급하든지 무조건 입찰된다. 중소업체가 1원에 태블릿PC를 공급하겠다고 해도 입찰에서 떨어지게 된다.

‘협상에 의한 계약’에 중소기업이 입찰되기 힘든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이 계약은 ‘제안서 제출’로 이뤄지는데 이를 만드는 작업이 중소기업에는 엄청난 부담이다. 예를 들어 1000억원이 넘는 사업 제안서는 완성에만 몇억원이 소요된다.

실제로 협상에 의한 계약 체결 방식으로 진행된 입찰에서는 중소기업이 입찰된 경우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최근 1년간 협상에 의한 계약 수주 관련 자료에 따르면 14개 사업 중 대기업 주식회사 KT가 8개, 롯데정보통신이 1개, 중견기업 AJ네트웍스가 4개의 사업을 맡았다. 이들 모두 삼성전자 태블릿PC로 입찰에 참여해 전부 낙찰됐다. 이처럼 협상에 의한 계약은 대기업이 아니면 중소기업이 참여하더라도 수주가 어렵다.

중소업체 관계자는 “태블릿PC는 예술성·안전성의 측면에서 평가할 게 없는 제품으로, 단순 구매에 불과하다”며 “다수공급자 계약에 맞는 사업인데 이를 교육청이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진행하는 부분도 부적절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계약 방식 바꿨지만 中企 참여 불가

경기도교육청은 이 같은 업계의 항의에 ‘협상에 의한 계약’에서 ‘다수공급자 계약’으로 변경했다. 다수공급자 계약은 교육청이 정한 사전규격에 맞는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사업자는 모두 참여할 수 있다. 참여만 하면 사업자 중 가장 낮은 가격을 제출한 사업자가 최종 입찰된다. 하지만 이 계약에서도 중소기업이 쉽게 참여할 수 없다.

현재 다수공급자 계약 방식으로 입찰을 진행하는 교육청 중 경기도고양교육지원청을 제외하고는 교육청의 태블릿PC 규격을 맞출 수 있는 기업은 중국의 레노버와 삼성전자 등 대기업밖에 없다.

1차 태블릿PC 보급 사업에 입찰된 경력이 있는 중소기업이 공급하는 태블릿PC 단말은 SD카드 64㎇, 내장 64㎇로 총 저장용량 128㎇의 모델이다. 삼성전자와 중국의 레노버가 공급하는 단말은 내장으로만 128㎇의 저장용량을 가지고 있다. 이에 교육청은 딱 두 대기업만 입찰에 들어올 수 있는 기준인 ‘내장으로만 128㎇의 저장용량을 가진 제품’으로 사전규격을 정했다.

중소기업은 메모리뿐 아니라 LCD 해상도에서도 발목이 잡혔다. 일부 교육청은 2000×1200 해상도로 규격을 선정했는데 이를 맞출 수 있는 기업 역시 삼성전자와 레노버뿐이었다. 중소기업 제품의 해상도는 1920×1200로 80픽셀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이 때문에 입찰에 참여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한 건 학생들에게 보급되는 교육용 콘텐츠는 대부분 1920×1080으로 제작되고 이를 구동하는 데에는 28㎇의 저장용량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즉 꼭 고사양의 제품이 필요한 건 아니다.

중소업체 관계자는 “지금도 일부 수요기관은 제품 규격 사항을 특정 대기업 규격에 맞춰 구매 공고를 게시해 중소기업들이 참여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부분은 공공 조달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내 중소기업들은 제품의 개발, 제조, 유통, 서비스까지 품질 및 서비스 개선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대기업에 가까운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다”며 “조달 시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중국산 제품이나 국외 기업의 제품들이 조달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은 현 정부의 중소기업 상생 정책과도 거리감이 있는 현상”이라고 짚었다.

경기도교육청 전경. (제공: 경기교육청) ⓒ천지일보 2021.12.2
경기도교육청 전경. (제공: 경기교육청) ⓒ천지일보 2021.12.2

◆교육청 “조달청서 샀을 뿐 잘못 없다”

이와 관련해 교육청들은 대체로 물품선정위원회를 통해서 학교 측의 의견을 수렴해 계약 방식, 사전규격을 정했을 뿐 중소기업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을 내놨다.

경기도용인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생들이 1~2년 쓰는 게 아니라 3~4년 쓸 테니까 사양이 좋은 것으로 선택을 한 것”이라며 “교육청에서 규격을 일괄로 정한 게 아니고 학교에서 어느 정도 규격이면 되는지 함께 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은 못 들어오게 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예산 범위 내에서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 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동두천양주교육지원청 관계자는 “SD카드를 제외한 이유는 그것이 가진 단점 때문”이라며 “논의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또 “해당 중소기업 쪽에서 사업을 집행할 의지가 있다면 경쟁 제품보다 스펙을 높이면 된다”고 전했다.

상반기에는 다수공급자 계약을 하다가 하반기부터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을 도입한 경북교육청의 관계자는 “1차 사업을 해보니까 학교에서 불편한 점이 있었다고 접수가 돼서 2차에서는 ‘하자 보수(보험처리)’를 넣기 위해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을 선택했다”며 “상반기 때 다수공급자 계약을 통해 중소기업과 제휴해본 경험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KT 측은 정부와 유착해 독점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달청을 통해 계약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교육청과) 짬짜미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정부대전청사. (제공: 산림청) ⓒ천지일보 2021.5.20
조달청이 입주해 있는 정부대전청사 전경. (제공: 산림청) ⓒ천지일보 2021.5.20

◆“조달청의 불공정한 업체 선정이 문제”

중소기업은 대기업 물품을 구매하고 싶으면 직접 대기업과 계약을 통해 사야지 조달청을 통해 사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조달청의 존속 이유는 국가에 꼭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업체를 선정할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한 경쟁으로 상생할 수 있게끔 돕기 위해서라는 지적이다.

국부 유출, 세금 낭비라는 비판도 나온다. 국내 경제·기업 발전 취지에 따라 세워진 조달청이지만 중국 기업 레노버도 참여할 수 있는 구조다. 사전규격에 맞는 제품만 제조할 수 있으면 누구나 참여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입찰에 참여한 레노버가 레노버코리아 또는 본사가 아닌 서울에 있는 유통망(대리점)의 개념이라서 3~5년까지 사후 서비스를 보장할 수 있는 태블릿 제조·수리·보급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기도동두천양주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사전규격에만 맞으면 입찰 참여에 제한이 없다”며 “공공기관 입장에서 사업을 추진할 때는 업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소업체 관계자는 “대기업과 계약하면 편하니까 그들을 선택하는 것도 있겠지만 이는 조달청의 존속 이유와 맞지 않는다”며 “설령 물품선정위원회와 학교 측에서 삼성전자 등 브랜드 상품을 사고 싶다고 원한다고 하더라도 중소업체에도 공정하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조달청이 해야 할 일”이라고 호소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채널: 천지일보
  • 전화: 1644-7533
  • 이메일: newscj@newscj.com
저작권자 © 천지일보 - 새 시대 희망언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지면구독신청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