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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마야문명, 왜 역사 속에서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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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news CheonJi] 찬란했던 마야문명, 왜 역사 속에서 사라졌을까

천지일보 영어섹션지 global news CheonJi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이번 호에는 △표류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 ▲실질적 결과로 주목 받는 세계평화운동가 이만희 대표의 평화행보 ▲100년 전 동북아 평화의 해법을 제시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과테말라에서 시작돼 멕시코까지 전해졌던 놀랍고 미스터리한 마야문명의 변천사 ▲최근 뜨고 있는 ‘성경’을 소재로 한 영화의 특성과 논란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내용을 담았습니다. 영어섹션지에 실린 한글 기사 원문은 인터넷 뉴스천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과테말라에 있는 마야문명 띠깔 유적지의 제규어사원. (사진제공: 과테말라 대사관)

영문판 ▶ [global news CheonJi] Why Did the Mayans Disappear in History?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중앙아메리카 열대 밀림의 오지 깊숙한 곳에 약 1300년 동안 화려한 문명을 꽃피우다가 일순간 폐허가 돼버린 수수께끼 같은 마야문명의 흔적이 있다.

마야문명은 고도의 천문학을 자랑했다. 첨단기기나 망원경도 없었을 시기에 단지 천체를 관측하고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는 것만으로 약 20개의 달력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20진법을 사용했고, 0의 개념을 세계에서 최초로 이해한 부족으로 밝혀졌다. 지구가 둥글고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위도와 경도의 개념, 행성들의 이동 법칙을 이해하고 있었다.

농경에 쓴 365일로 계산된 태양력은 1500년이나 늦게 만들어진 그레고리력보다 더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던 제례주기는 1년을 260일로 계산했다. 이 두 달력은 52년마다 일치했는데, 마야인들은 이때마다 이 세상이 한 번씩 끝나는 것으로 믿고 살던 도시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 새로운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몇 년 전에는 마야 달력 때문에 전 세계가 종말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마야인들은 고유한 장기 날짜 계산법을 토대로 14만 4000일을 1박툰으로 봤다. 자신들은 6박툰에 사는 것으로 보고 달력을 2012년 12월 21일까지만 기록했다. 이를 토대로 종말론자들은 지구 종말을 주장했지만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마야문명에서 종교는 절대적인 가치였고, 신관(神官)의 지위는 막강했다. 마야의 천문학이 발달한 것도 신과 인간을 이어주기 위해 신관이 공적으로 쌓은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마야인은 세계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지하세계와 현 세계, 지상의 세계이다. 지하와 지상의 세계에는 계층별로 주관하는 신이 존재한다고 여겼고, 그 신들의 세계는 피라미드와 연결된다고 믿었다. 초기 과테말라 티칼 유적지에서 후기 멕시코의 치첸잇차까지 마야문명의 피라미드에서 신전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야인들의 성서인 ‘포폴 부’에서는 창조주인 신이 옥수수 가루에 자신의 피를 섞어 사람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 때문에 마야인들은 신의 희생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피를 제물로 바쳤다. 신전에서 발견되는 그림을 보면 지배계층인 왕족과 귀족들이 제물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의 피를 뽑아 제물로 사용한 장면이 그려졌다. 이들은 제물이 되기 위해 금욕, 금식 등 정결 의식을 치렀던 것으로 조사됐다.

마야인들이 섬긴 신은 태양‧비‧달, 재규어‧뱀, 옥수수 등 다양했다. 마야 후기에 번성한 도시로 갈수록 신전에서는 뱀과 비의 신 ‘착(하반신이 뱀의 모양)’의 형상이 자주 등장한다. 일례로 치첸잇차에 ‘착’을 위해 지은 ‘쿠쿨칸의 신전’이 있다. 이 피라미드 하단부에는 거대한 뱀 머리 조각들이 있으며, 봄‧가을 태양의 이동에 따라 거대한 뱀이 기어가는 형상이 연출된다. 이 신전에는 사람의 심장이 제물로 바쳐졌다. 태양신을 섬기며 대량의 인신공양을 한 아스텍의 전통과 비슷하다.

마야문명은 기원전 1세기 발생해 서기 500~600년 정점을 이뤘다. 과테말라와 멕시코 남부, 온두라스, 베리제, 엘살바도르에 걸쳐 50만㎢에 달하는 지역에서 번성했다. 7세기 이후 척박한 농지와 카리브족의 계속된 침략 때문에 유카탄 반도에서 내륙으로 이동하며 쇠퇴기를 맞았다.

이후 10세기 말 후손 마야 부족들이 신으로 숭배한 부족장 ‘케찰 새의 깃털 달린 뱀’이 다시 유카탄 반도로 건너가 다른 민족인 톨테카족과 섞여 신 마야문명을 일으켰다. 이후 번성하는 듯했지만 13세기 이후 마야판 세력에 멸망당했고, 아스텍 민족의 지배를 받았다는 견해가 있다.

이후 마야의 도시들은 돌연 폐허로 변했고, 16세기에 와서는 스페인에 정복당했다. 스페인의 선교사들은 마야의 제례의식을 경멸해 그들의 문서와 자료를 모두 불태웠고, 훗날 벽화에 남겨진 문자가 발견돼 마야문명의 일부가 베일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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